조지아주의 약 50개 공립대학이 참여한 이번 행사는 지원 대학에 제한이 없이, 지원 수수료가 모두 면제된다.
지원서류 수수료 면제는 대학 지원의 달(Apply to College Month)의 일환으로, 조지아 학생 재정 위원회, 조지아 대학 시스템(USG), 조지아 기술 대학 시스템(TCSG), 사립 교육 기관 및 조지아 군사대학 간의 파트너십 결과인데, 조지아 텍, 조지아 주립대, UGA, 케네소주립대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일부 대학에서는 커먼앱(Common app)에서 학교 코드나 특정 답변을 요구하기도 한다.
조지아주 켐프 주지사는 “대학 지원 수수료 면제 행사와 조지아 매치(Match) 입학 프로그램으로, 우리 주에서 열심히 일하는 차세대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하고 있는 혁신적인 조치의 일부”라고 밝혔다.
알파레타의 핫플레이스인 아발론에 두 가지 새로운 예능 시설이 들어선다. 지붕이 있는 야외 공연 무대와 LED 스크린이 추가될 예정인데 내년 1월 착공해 3월 중순 완공된다.
NAP( North American Properties ) 관리 파트너인 팀 페리는 언론에서 “소매업은 브랜드든 개발이든 출시되는 날부터 시대에 뒤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우리 업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 선호도를 충족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창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매우 효율적인 장소나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를 찾고 있우며, 아발론은 이 지역의 최고의 보석으로 남아 있으며, 우리는 트래픽과 판매를 촉진하는 상품 기반 투자를 통해 그 관련성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음향과 조명이 완비된 16′ x 36′ 무대와 연결된 10′ x 18′ LED 스크린이 분수대 앞 광장과 리걸 시네마 영화관에 추가되어 매장 전면도 새롭게 바뀐다. 현재 계절에 따라 운영되는 아이스링크가 광장에 있다.
렌더링: 공식 조감도
이 개선 프로젝트의 예산은 총 100만 달러이며 지역 성 패트릭의 날 전통인 럭 오브 아발론(Luck of Avalon) 기간에 첫 선을 보인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아발론은 매년 200개 이상의 이벤트를 개최하고 750만 명의 방문객을 수용하고 있다. 86에이커 규모의 커뮤니티에는 50만 평방피트 이상의 소매 공간이 있다. 컨퍼런스 센터와 풀 서비스 호텔; 클래스 A 사무실 공간, 단독 주택 및 고급 임대 주택도 포함되어 있다.
NAP는 2012년에 아발론을 개발하고 2016년에 PGIM 에 5억 달러에 매각했다. 이 회사는 관리 및 소매 임대 활동을 담당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대장동 일당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를 1심 법원이 인정하면서 이른바 ‘428억원 약정설’에 대한 검찰 수사가 다시 동력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표 측은 대장동 사업 과정에 민관 유착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개인이 벌인 일이고 이 대표 측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최측근인 김씨와 대장동 업자 간 경제적 유착 관계가 인정되면서 이 대표가 대장동 사업을 통해 ‘정치적 이득’뿐 아니라 경제적 이익까지 약속받은 게 아니냐는 검찰의 의심이 한층 힘을 얻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조병구 부장판사)는 30일 정치자금법 위반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 대표 측근 가운데 1심 선고를 받은 첫 사례다.
재판부는 김씨가 대장동 민간업자 남욱 씨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6억원, 뇌물 7천만원을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예비경선 전후인 2021년 4∼8월 대선 자금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하고, 이 대표 성남시장 재직시절인 2013년 2월∼2014년 4월에는 대장동 사업 관련 편의 제공 등을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는 검찰의 공소 사실을 상당 부분 인정한 것이다.
유씨와 거리를 두면서 대장동 일당과의 유착 관계를 부인해온 이 대표로서는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김씨는 이 대표 스스로 “측근이라면 정진상, 김용 정도는 돼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을 정도로 최측근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성남시의회 의원, 경기도청 대변인, 이 대표 대선캠프 총괄 부본부장 등을 지내며 이 대표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왔다.
특히 김씨가 대선 경선 자금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했다는 것이 검찰 공소사실의 전제였던 만큼 위법 행위의 수혜자를 이 대표로 볼 소지도 있다.
검찰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실 자체는 인정된 만큼 앞으로 6억원이 실제로 어디에 쓰였는지, 이 대표가 금품 수수를 지시하거나 묵인했는지 등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유씨 진술의 신빙성을 상당 부분 인정한 것도 검찰로서는 큰 성과다. 유씨는 여러 재판에서 ‘대장동 비리의 몸통은 이 대표’라는 검찰의 시각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하고 있다.
[그래픽] ‘유동규-김용 불법 자금 전달’ 법원 1심 판단(서울=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대장동 일당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다시 구속수감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조병구 부장판사)는 30일 정치자금법 위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불법정치자금 6억원, 뇌물 7천만원을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김씨와 유씨가 남씨로부터 받은 8억4천700만원이 대장동 일당이 이 대표 측에 약속한 428억원 중 일부라는 의혹을 수사하는 데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검찰은 이 대표가 대장동 일당에 개발 사업 특혜를 몰아주고 성남도시개발공사에 4천895억원의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의 배경에 이른바 428억원 약정(천화동인 1호 배당금)이 있다고 의심해왔다.
다만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충분히 수집되지 않았다고 보고 지난 3월 대장동 개발 특혜 비리 의혹으로 이 대표를 기소할 때는 관련 혐의를 포함하지 않았다.
대장동 업자들의 사업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얻은 ‘경제적 이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공약 이행 등 ‘정치적 이익’만 범행 동기로 제시한 것이다.
검찰은 계속 수사를 이어가겠다고 했으나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대장동 일당과 이 대표를 잇는 연결고리인 김씨에게 유죄가 선고된 만큼 검찰은 수사망을 좁혀 이 대표의 관여 여부를 집중적으로 수사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판결에 대해 “검찰이 주장한 사실관계가 대부분 인정받았고, 유씨의 진술도 상당 부분 신빙성이 인정됐다”며 “지방자치 권력이 개발업자들과 유착해 막대한 이익을 준 범죄라는 검찰의 그간 주장도 재판부가 양형 이유에 분명히 밝혔다”고 평가했다.
이어 “상당히 의미가 있는 만큼 차분히 판결문을 분석한 후 어떻게 대응할지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100세를 일기로 별세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은 물론 국제 외교계의 ‘거두(巨頭)’로 평가받는다.
그는 존 F.케네디 전 대통령부터 현직인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2명의 전현직 미국 대통령에게 외교정책을 조언해왔다.
특히 그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리처드 닉슨 행정부와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 등으로 재임하며 미국의 외교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1972년 당시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공산당 주석 간 정상회담을 통한 미중 수교의 토대를 닦았으며 구소련과는 데탕트(detente·긴장완화)를 조성하는 등 격동의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키신저는 국제 현안을 이데올로기나 도덕의 관점에서보다는 국가 이익이나 세력 균형의 관점에서 접근한 현실주의 접근을 취했다. 외교에서 중요한 것은 도덕보다는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평생 그에겐 찬사와 함께 그에 못지 않은 비난도 뒤따랐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 회담’ 구상을 내놨다. 키신저는 1975년 9월 제30차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4자 회담 개최를 공식 제안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키신저 전 장관은 냉전의 역사를 조형한 인물”이라며 “전후 가장 강력한 국무 장관으로서 그의 업적은 추앙과 매도를 동시에 받는 복합적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독일식 억양, 예리한 재치, 올빼미 같은 외모와 영화배우들과 데이트로 그는 절제로 일관한 전임자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이며 전 세계의 인정을 받았다”며 “그가 국무장관에 임명됐을 당시 갤럽 조사에서 그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선정됐다”고 전했다.
저우언라이(은래) 전 중국 총리(좌)와 키신저중국의 저우언라이 총리(왼쪽)가 미국의 키신저 대통령 특별보좌관에게 베이징 오리구이 요리를 젓가락으로 집어주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 나치 박해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 출신
독일계 유대인 출신인 키신저는 1923년 5월 27일 독일 바이에른주 퓌르트에서 태어났다. 하인츠 알프레트 키싱거(Heinz Alfred Kissinger)가 그의 독일식 이름이었다. 15세가 되던 해인 1938년 가족과 함께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영국 런던을 거쳐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뉴욕 시티칼리지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던 1943년 미 육군에 징집됐으며, 전후에는 독일 주둔 미 군정청에 소속돼 복무하기도 했다. 1950년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학사 학위를, 1951년과 54년에 각각 같은 대학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 취득 이후 하버드대 전임강사와 정치학 교수로 몸담으면서 국제문제센터(Center for International Affairs)를 공동 설립하고(1958년), 미국외교협회(CFR)와 랜드연구소를 비롯한 싱크탱크와 미 국무부 등의 컨설턴트 등으로 활약했다.
특히 1957년에는 소련의 공격에 대한 ‘대량 핵 보복’ 정책에 맞서 전술적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함께 사용하는 이른바 ‘유연 대응전략’을 강조한 ‘핵무기와 외교정책'(Nuclear Weapons and Foreign Policy)을 출간했다.
역사적인 미국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주석의 정상회담1972년 2월 21일 닉슨 미국 대통령(왼쪽)이 마오쩌둥 중국공산당 주석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 닉슨-포드 정부서 미중수교·미소 데탕트 길닦아
학자에서 외교관으로 노선을 바꾼 그는 케네디 전 대통령부터 바이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두 12명의 미국 대통령의 조언자로서 현대사 전반에 큰 그림자를 남겼다.
키신저는 닉슨 행정부에서 1969년 1월 국가안보보좌관, 1973년 9월에는 제56대 국무장관을 맡아 한동안 두 직을 겸직했다. 이는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에도 유지됐다.
당시 닉슨 대통령이 포드 부통령에게 사임의 뜻을 전하면서 키신저를 옆에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했고, 바통을 넘겨받아 대통령이 된 포드가 이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키신저는 특히 미중관계에서 큰 획을 그었다.
1971년 두 차례의 중국 방문을 통해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와 회담을 가졌고, 이는 이듬해 2월 닉슨 대통령의 방중 및 마오쩌둥 주석과의 미중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미중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처음으로 23년간의 적대관계를 뒤로 하고 관계개선에 나선 것으로,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은 상호불가침과 평등호혜 등 5가지 원칙을 담은 상하이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미국 내 베트남전 반전여론 등에 밀려 국내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소련과의 데탕트를 추진하는 동시에 소련과 갈등을 겪던 중국과는 ‘대소(對蘇) 전략적 제휴’를 맺으며 돌파구를 모색했다. 닉슨 대통령의 외교 책사인 키신저의 ‘외교’가 결실을 이뤄낸 것이다.
키신저의 방중과 미중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 탁구대표팀이 중국을 방문해 친선게임을 벌인 1971년 4월 이른바 ‘핑퐁 외교’가 양국간 화해·교류의 물꼬를 텄다.
미중은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의 회담 이후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을 거쳐 1979년 공식 수교에 골인했다.
키신저는 소련과는 데탕트 전략의 일환으로 1969년부터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I) 협상을 주도, 1972년 협정을 체결했다.
키신저 전 장관과 시진핑 주석[신화사 캡처]
◇ 퇴임후에도 왕성한 활동…”외교, 선호하는 게임”
키신저는 국무장관 퇴임 이후에도 저술 및 연구 활동과 강연 등을 통해 미 외교정책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핵무기와 외교정책, 중국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의 많은 저서를 남겼다.
또 고령의 나이에도 국제 컨설팅 회사인 ‘키신저 어소시에이츠'(Kissinger Associates) 회장을 지낸 것을 비롯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CFR, 애틀랜틱 카운슬 등의 멤버로도 활동했다.
키신저는 1973년 당시 외교를 ‘선호하는 게임'(favorite game)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국의 각계 인사들이 이따금 키신저를 찾아 자문하는 ‘외교 멘토’로서의 역할을 이어갔다.
닉슨 행정부를 조각하다시피한 그의 영향력은 특히 미국 공화당에서 막강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마저 2016년 캠페인 당시 이미지 쇄신을 위해 키신저를 찾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키신저는 이후 NYT와 인터뷰에서 “내가 조언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고자 하지도 않았던 사람이 트럼프가 처음은 아니다”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죽의 장막’을 열었던 그는 퇴임 이후에도 특히 여러 차례 중국을 오가며 가교 역할을 이어갔다. 반도체 패권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한창이던 올해 7월에도 중국을 깜짝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다.
시 주석은 1970년대 미중 양국 사이에서 ‘핑퐁외교’를 주도한 키신저에게 “중·미 관계 발전을 추진하고 양국 인민의 친선을 증진하기 위한 역사적 공헌을 잊지 않을 것”이라 키신저를 “‘라오 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는 뜻)”로 표현했다.
앞서 올해 5월 100세 생일을 맞은 키신저는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두 권의 책을 마무리 지었고 또 다른 집필 작업에 들어가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키신저는 반전단체나 인권단체 등으로부터 ‘전범’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베트남전 종식 노력과 관련해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노벨평화상 심사위원 2명이 휴전협상 중 하노이에 폭격을 명령한 키신저에게 평화상을 주는 것에 반대한다며 사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휴전협상을 일찍 시작했더라면 수만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언론인 월터 아이작슨은 키신저 전기에서 “키신저는 미국이 베트남전 철수로 인해 겪은 후유증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균형과 권력을 만들어내는 데에 본능적 감각을 보였다”며 “그러나 진정한 영향력의 원천인 도덕적 가치에 있어서는 그 같은 감각을 보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냉전 시기 미국 외교와 세계 질서 재편을 이끈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2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100세.
외교계 거목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별세 소식에 세계 각계 인사의 추모가 이어졌다.
29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미국이 외교 문제에서 가장 신뢰할 만하며 뛰어난 목소리 가운데 하나를 잃었다”며 애도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키신저 전 장관에 대해 “어린 유대계 소년으로 나치를 피해 달아나 미군에서 그들(나치)에 맞서 싸운 남자를 오랫동안 존경해왔다”며 “난민이었던 그가 나중에 국무장관에 임명된 것은 미국의 위대함만큼이나 그의 위대함을 드러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1923년 독일에서 태어나 1938년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은 소셜미디어 엑스에 “장관 재임 기간 그가 건넨 품위 있는 조언과 도움에 항상 감사할 것”이라며 “그는 항상 힘이 되고 해박하기에 매번 대화하고 나면 그의 지혜로 나는 더 준비되고 나아졌다”고 썼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1974년)[연합뉴스 자료사진]
각국의 정상들도 그의 타계에 애도를 표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대서양을 넘어 미국과 독일의 우정을 위한 그의 헌신은 매우 컸고 그는 항상 조국 독일과 가까이 있을 것”이라며 “세계가 특별한 외교관을 잃었다”고 추모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렘린궁 홈페이지에 올린 애도문에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에서 존경받는 권위를 누렸던 뛰어난 외교관이자 현명하고 선견지명 있는 정치가가 세상을 떠났다”고 애석해했다.
푸틴 대통령은 키신저 전 장관이 구소련과 미국이 데탕트를 달성하고 중요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게 실용주의 노선을 폈다는 점도 강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소셜미디어에 “키신저 전 장관은 역사의 거인”이라고 적으며 “그의 사상과 외교는 그의 시대뿐 아니라 우리 시대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애도를 표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키신저 전 장관의 업적에 대해 “미국과 중국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포함해 지역(아시아) 평화와 안정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세계 외교장관들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교장관은 “외교의 대가인 키신저 전 장관은 시대에 큰 족적을 남겼다”고 추도했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도 “위대한 정치가이자 깊은 존경을 받는 외교관으로서, 세계 무대에서 많이 그리워할 것”이라고 소셜미디어에서 추모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소셜미디어에 “키신저 전 장관의 시대는 절대 쉽지 않았지만, 그 큰 도전은 그의 위대하고 호기심 많은 마음과 잘 맞아떨어졌다”며 “키신저 전 장관이 남긴 지적 유산은 외교와 세계 질서에 대한 이해에 계속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적었다.
셰펑 주미 중국대사는 소셜미디어에 “키신저 박사가 100세에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았고 슬프다”며 “세계 모두에 커다란 손실”이라고 적었다.
이어 “역사는 그가 미·중 관계에 기여한 것을 기억할 것”이라며 “그는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가장 소중한 오랜 친구로 항상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키신저 전 장관이 1970년대 냉전 시대에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성사시키는 등 1979년 미·중 수교에 공이 컸다는 점을 부각한 표현이다.
닉슨 전 대통령의 딸인 트리샤 닉슨과 줄리 닉슨도 “미국의 가장 노련한 외교관 중 한명이 별세한 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키신저 전 장관이 냉전 종식에 큰 역할을 했다고 기억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키신저 전 장관을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유명 인사 중 한명”이라고 극찬한 뒤 키신저 전 장관의 유산이 수십 년, 심지어 수 세기 동안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키신저 전 장관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미국의 음악 잡지 ‘롤링스톤’은 인터넷판에 실은 부고 기사에 “미국 지배층에 사랑받은 전쟁 범죄자인 헨리 키신저가 마침내 죽었다”고 썼다.
뉴욕타임스(NYT)는 키신저 전 장관이 과거 전 세계적으로 죽음과 전쟁을 초래한 외교정책을 옹호했다는 비난이 엑스에 많았다고 전했다.
미국 NBC 뉴스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에서는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캄보디아 폭격 책임이 키신저 전 장관에게 있다는 주장도 게시됐다.
키신저 전 장관은 베트남전 종식 노력으로 197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반전단체나 인권 단체 등으로부터 ‘전범’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아래는 연보이다.
▲ 1923년 5월 27일 = 독일 바이에른 미텔프랑켄 퓌르트 유대인 집안에서 출생.
▲ 1938년 = 독일 나치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 뉴욕에 정착.
▲ 1943년 = 미국으로 귀화.
▲ 1950~1954년 = 미국 하버드대에서 수학. 학사에 이어 정치학 석사·박사 학위 취득.
피해자는 서배너 경찰에 자신이 Westlake 아파트 주차장에서 운전하던 중 다른 차량에 탄 사람이 근처에서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총격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총소리를 듣고 차량을 통제하지 못하고 추락해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부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이번 총격 사건 이후 채텀 카운티 경찰국은 심문을 위해 24세의 에니겔 트라피오(Enigel Trappio)를 찾고 있다고 발표했다.
마지막 총격 신고는 경찰이 West 38th Street와 Bulloch Streets 에 도착한 오후 5시경이었다. 지역방송매체 WTOC 팀이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 구급대원들이 한 남자를 구급차에 태우고 있었고, 서배너 경찰은 그 남자가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 메모리얼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확인했다.
월요일 밤 현재 이 총격 사건에 대한 용의자는 없다.
경찰은 지역사회에 제보자를 찾고 있으며, 제버자들은 경찰에 연락하거나 912-234-2020번으로 범죄 저지 담당자를 통해 익명으로 제출할 수 있다.
2030 부산 세계 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한 한국의 마지막 프레젠테이션(PT) 연사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나선다.
정부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은 28일(현지시간) 오후 1시30분께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리는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3차 총회에서 부산 유치를 호소하는 연설을 한다.
반 전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경험에서 얻은 국제사회 연대의 필요성을 각국 대표들에게 강조할 예정이다.
정부는 그동안 한국이 과거 국제사회로부터 지원받아 이룩한 유산을 부산 엑스포를 통해 함께 나누겠다며 ‘연대의 엑스포’를 철학으로 내세워 왔다.
반 전 총장은 유엔 지속 가능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도 부산 엑스포가 기여하리라는 점을 피력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에 투표권이 많은데 반 전 총장님이 현직에 계실 때 이들 저개발국에 엄청난 혜택을 베풀어 주셨다”며 “이들 국가가 그런 점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약속을 한국이 지켜가겠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반 전 총장님께 부탁드렸다”고 설명했다.
약 20분간 이어질 마지막 PT에선 한덕수 국무총리,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박형준 부산시장, 나승연 부산 엑스포 홍보대사도 막판 지지를 호소한다.
먼저 박 시장이 부산시 캐릭터인 부기, 글로벌 서포터즈 5명과 함께 무대에 올라 부산의 매력을 소개하고, 이어 나 홍보대사가 인류 미래를 위한 ‘솔루션 플랫폼’이라는 부산 엑스포의 핵심 비전과 한국의 차별화한 강점을 소개한다.
최 회장은 한국의 솔루션 플랫폼 ‘웨이브'(WAVE)를 통해 인류 문제 해결에 기여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한 총리는 연대 박람회 구현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노력, 즉 공적개발원조(ODA) 예산 확대나 개도국 지원 계획 등을 소개한다.
부산 세계 박람회 개최지 결정 앞두고, 세느강변에서 청사초롱 들고 ‘파이팅’(파리=연합뉴스)
정부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받은 도움을 보답하고자 한다는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PT 중간 한국전 영국 참전 용사 콜린 태커리(93)씨와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의 손녀 얘기도 짤막하게 영상으로 선보인다.
지휘자 정명훈, 소프라노 조수미, 배우 이정재 등 부산 엑스포 홍보대사와 K-팝 스타 싸이, 김준수 등의 응원 영상을 끝으로 한국의 마지막 호소전은 마무리된다.
정부 관계자는 “PT가 끝난 뒤 곧바로 투표로 이어지니까 이번 PT의 콘셉트를 선거캠페인처럼 구상했다”며 “한국이 PT도 1번, 기호순도 1번이니 투표권자들에게 ‘1번’이 잔상에 남도록 영상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연사들 선정 배경에 대해선 “마지막 PT에서는 정부와 경제계 대표 인물, 신뢰감 있는 연사, 호소력있는 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특히 반 전 총장에 대해선 “연설을 듣는 분들이 대게 외교관이나 각국 장관급 인사이니 가장 호소력이 강한 인물, 한국이 내세울 카드 중 최고의 카드를 내세웠다”고 설명했다.
한국에 이어 이탈리아, 사우디가 20분씩 최종 PT를 마무리하면 총회장은 곧바로 투표 준비에 들어간다.
1차 투표에서 투표 참가국의 3분의 2 이상 득표국이 나오면 그대로 개최지가 결정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상위 2개국이 결선을 치러 최다 득표국을 선정한다.
한국은 이탈리아를 누르고 2차 결선에 올라 사우디를 상대로 대역전극을 쓰겠다는 각오다.
현장 진행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최종 결과는 현지시간 오후 5시(한국시간 29일 오전 1시)께 나올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