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5월 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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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 칼럼] 위풍당당하게 나의 길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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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 시인

   사람마다 기억 속 한자리를 차지하는 텔레비전 광고들이 있을 것이다. 나에겐 어린시절 모 항공사의 광고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하늘을 나는 장면이었는데 배경 음악이 참 좋았다. 광고에 쓰인 음악은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의 ‘위풍당당 행진곡 (Pomp and Circumstance Military Marches)’이었다. 어린 나에게 ‘위풍당당’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인상 깊었던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제목과 장면을 기억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엘가는 ‘사랑의 인사’로 유명한 작곡가이다. 그는 ‘위풍당당’이라는 제목을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비극인 ‘오셀로’의 제3막 제3장의 대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주인공 오셀로의 독백으로 ‘울부짖듯이 울어대는 군마와 드높게 울리는 나팔소리, 심장을 두드리며 사기를 북돋우는 북소리, 영혼을 찢어대는 피리 소리와도 작별이다. 나의 영광스럽고 위풍당당했던 화려한 시절이여 안녕’이라는 내용이다. 

   경쾌하고 웅장한 탓에 엘가의 음악은 많은 콘서트, 영화, 광고에서 사용되었다. 더불어 셀 수 없는 행진 및 예식들에서도 즐겨 들을 수 있었다. 아마도 엘가가 그려낸 위풍당당함이 청중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길가에서 마주한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장면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위풍당당 행진곡’이 연주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멋진 순간을 몇 글자로 남겼다. 

위풍당당

집 앞 작은 호수마다 / 오리와 거위 중간쯤 되는
철새 기러기들이 /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긴 목으로 물을 길어 / 몸을 적시며 단장이 한창이다
이리저리 두리번 / 옆에 있는 풀밭으로
이동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뒤뚱뒤뚱 엉덩이를 흔들며 / 엄마, 아빠, 아이들
건너편을 가기 위해 / 자동차가 오는 길위를
모두 한 줄로 걸어간다

느릿 느릿 뒤뚱뒤뚱 / 답답하기 그지없다
모든 차량들은 멈춰 서서 / 그네들이 건너기를
마냥 쳐다보고만 있다

[2019, ‘날지 못하는 새도 아름답다’ 중에서, 이상운]

   아마도 느릿느릿 걸음이 위풍당당함과 관계가 없어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뒤뚱뒤뚱 엉덩이를 흔드는 그네들의 걸음은 모든 차량을 멈춰 세웠다. 사람들은 마냥 쳐다보고만 있어야 했다. 무엇 때문이었는가. 기러기 가족들의 당당함이었다. 탈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외적 부러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느릿느릿 뒤뚱뒤뚱’은 전근대적 담론을 넘어 미개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자동차에 탄 사람들이 자의든 타의든 그네들의 위풍당당에 매료되고 말았다. 곰곰이 눈앞의 현상을 씹으며 다른 글자들을 종이 위에 남겨 놓았다.  ‘캐나다 기러기’라는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캐나다 기러기

도로 위 모든 차들을 멈추게 하는 / 기세등등한 기러기들 / 몽알몽알 행진을 한다

흥미롭게 사진을 찍는 이들 / 손을 들어 바쁘다 시늉하는 이들 / 웃으며 마냥 행복해하는 이들

기러기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 파르댕댕한 것으로 흔적을 남기며
엉덩이 흔들며 줄 맞춰 길을 건넌다
혹시 급하게 출발하는 차라도 있으면 / 아빠 기러기에게 쪼임을 당하기 일쑤다

그네들의 땅에 인간이 침범한 것이다 / 그네들의 교통 법규를 인간이 위반한 것이다
그네들의 눈에는 우리가 이방인일 뿐이다

기러기들은 위풍당당하게 / 누구 하나 빨리 뛰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수천 마일을 비행하며 / 호수를 건너고 대륙을 굽이굽이 나는
위대한 캐나다 기러기이기에 / 바쁠 것이 없는 여유로움이다

[2019, ‘날지 못하는 새도 아름답다’ 중에서, 이상운]

    ‘여유로움’이란 번잡하고 분주하지 않는 안온함을 의미한다. 이런 상태는 수천 마일을 비행해 본 사람, 호수를 건너고 대륙을 굽이굽이 날아본 사람들이 누릴 수 있다. 바쁠 것이 없는 여유로움이 짙게 베어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직면하는 역경은 공짜가 아닌 것 같다. 고통은 사람을 농익은 성숙으로 인도하며 결국 안온함에 다다르게 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99세’의 ‘젊은’ 여성 환자를 만났다. 유머와 제스처를 섞어서 말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젊은 사람 같았다. 건강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책을 읽는 것, 퍼즐을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 텔레비전은 보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아침에 확인차 뉴스를 잠깐 본다고 답했다. 그녀의 첨언이 멋있었다. ‘그런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모든 것이 똑같은 내용이야.’ 그렇다. 99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할머니의 눈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는 말이다.

    문명에는 관심조차 없는 그네들은 위풍당당하게 자기네 길을 걸어갔고, 감동과 사유는 문명인들의 몫이 되었다.  어찌 보면 바쁠 이유가 없는 여유로움을 누리는 삶은 느릿느릿 뒤뚱뒤뚱으로 걸어야만 가능할지도 모른다.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 골머리를 쓰는 사람은 안과 밖이 분주할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사람이 자신의 ‘참나 (authentic self)’를 조우하게 되면 바쁠 것이 없어진다. 번잡과 분주에서 멀어지고 안온함에 가까워지는 것이리라. 대륙, 호수, 수천 마일과 같은 고통, 역경을 경험한 사람들은 ‘참나’를 만날 기회가 많다. 이미 대륙을 날아 보았기에 좁은 개울 앞에서 조급함도, 우울함도, 화냄도 빈도가 얕아지기 때문이다. 덤덤하게 보이지만 당당함 속에 표출되는 여유로움이다. 

   위풍당당하게 걷는 사람은 남의 눈치와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길을 걸어간다. 나의 길을 걷는 이들은 타인의 눈과 평가에 주눅 들지도 않는다. 빠른 속도와 겉의 화려함에도 기죽지 않을 것이다. 나의 속도로 나의 길(my way)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만약, 평가가 두렵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어떠한가. 나의 길에 타인들이 침범한 한 것이며, 타인들이 나의 교통 법규를 위반한 것이다,라고 말이다.  

   위풍당당은 바쁠 것이 없는 여유로움에서 나온다. 캐나다 기러기의 걷는 모습에서 오늘 또 배운다. 위풍당당하게 나의 길을 걷는 길동무들을 응원하고 싶다.

[*이상운 시인은 가족치료 상담가로 활동하며, (시집) ‘광야 위에 서다 그리고 광야에게 묻다’, ‘날지 못한 새도 아름답다’가 있다.]

*본 칼럼은 본보의 편집방행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엘가 -위픙당당한 행진곡, 영국 BBC 방송 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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