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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 칼럼] 울지 말고 가소 그대여 – 더디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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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 시인

매주 병원에서는 사별가족 모임이 열린다. 사별 후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5년이 지난 가족들이 모임에 참석한다.  참여자들이 능동적으로 서로의 눈물을 주고받으며 다독이는 모임이다. 공감하는 인간(Homo Empathicus) 과는 결이 다른 동질감의 영향력이랄까. 나는 진행자이지만 모임을 열고 닫는 역할밖에는 딱히 없을 정도이다.   

60여 년을 함께 걸어온 남편을 사별한 후에 삶의 흥미를 잃어버린 할머니, 그녀의 목소리는 눈물 섞인 떨림이었다. 아내를 그리워하는 60대 아저씨, 지난해 참석했던 성탄절 칸타타 기억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심폐소생술 중에 자신의 눈앞에서 딸을 보내야만 했던 어머니, 그녀는 딸의 성탄절 편지를 우연히 발견하고선 오열을 했다. 5년 전 아들과 남편을 잃은 후 지금도 눈물 속에 있다는 60대 아주머니, 여행 중에 아들에 대한 신비한 체험을 소개하며 우릴 전율케 했다. 아내를 잃어버린 70대 아저씨, 그는 결혼사진을 가지고 와서 보여주었다. 보고픔으로, 미안함으로, 때론 죄책감으로 뒤섞인 눈물의 이야기들이었다. 아름다운 기억들이 그들을 슬프게도 하지만, 그들을 다시 살게 한다는 것을 함께 깨달았다. 

숱한 사람들의 마지막을 대하며 산다. 때로는 진행형의 죽어감으로, 때로는 완료형의 죽음일 거다. 환자들의 마지막 숨소리, 눈빛, 끄덕임, 흐릿한 목소리가 방의 공기를 바꾼다. 유한성과 무한성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인간의 초연함과 숭고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눈물로 배웅을 하는 사람들, 손을 잡으며 고맙다는 이들, 포옹과 입맞춤하는 가족들, 모두 도화지처럼 하얗게 되는 순간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저서 <행복한 책 읽기>는 4년 381일 치의 일기로 쓰인 유고집이다. 그는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서 정신적으로 죽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형도 시집의 해설 부분에서 ‘실제로 없다는 점에서, 그의 육체는 부재이지만, 머릿속에 살아 있다는 의미에서, 그의 육체는 현존이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죽음은 육체적으로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나 남겨진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 속에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의미이다.  

사회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여러 부류들이 존재해야만 한다. 선동자들, 부역자들, 비판 없이 맹목 하는 대중들, 무관심(의도적 침묵)의 사람들, 그리고 부정의에 저항하는 무리들이다. 선동자들은 권력과 부를 거머쥔 지배층이다. 부역자들은 지배층에 기생하며 선동을 포장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이다. 비판 기능을 상실한 대중들은 선동당하는 쪽이며 사유 없는 돌팔매질을 일삼는 그룹들이다. 무관심의 다수는 사회의 여백을 의도적 침묵으로 채운다. 도도해 보이겠지만 침묵은 선동의 들러리가 되어 명분을 부여한다. 부정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비록 느리지만 사람다워지는 사회를 위해서 뜻을 굽히지 않는 항거자들이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인간의 존엄성은 아직도 짓밟혀 있을 것이다.  

예컨대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은 ‘인간이라는 동물은 안 있나,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리드해 주기를 바란다니까’라고 말했다. 영화의 대사처럼 맹목하는 대중들은 무자비한 선동가들을 반긴다. 선동가들이 좌표를 찍으면 가차 없이 돌팔매질을 해댄다. 이런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녀사냥’과 ‘희생양’이라는 형태로 비일비재했다. 선동자들과 부역자들은 시의적절하게 마녀사냥과 희생양을 이용했다. 대중들이 돌팔매질하도록 명분을 만들고 부추겼다. 부역자들은 무엇을 기대하며 충성을 할까. 영화 속 전두광은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저 안에 있는 인간들, 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 봐 그거 물라꼬 있는 거거든. 그 떡고물, 주디에 이빠이 처넣어 줄끼야. 내가.’

마녀사냥과 희생양은 왜 만들어지는가. 지배층은 절대 권력을 유지하고자 눈속임의 미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끼를 만들어 대중을 현혹하는 부역자들은 누구인가. 소위 법을 집행하는 권력층과 여론몰이하는 언론들이다. 고려이든, 조선이든, 일제 강점기든, 근현대이든 모두 데칼코마니스럽다. 부역자들이 희생양으로 찍으면 마녀가 되어 죽어야만 했다. 무고한 희생으로 남겨진 가족과 친구들의 고통과 슬픔은 누가 책임져야만 했나. 

양심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마지막을 선택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내려앉았다. 양심이라는 표현은 결코 완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박한 양심일지라도 지키려는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보이지 않는 외압과 사회 병리 (social pathology) 현상이 미울 뿐이다. 멀리서나마 아려오는 마음을 글로 남겨 놓는다.  

울지 말고 가소 그대여

울지 말고 가소 그대여
그대 가는 길에
걱정 이들랑 훨훨 털고
이제 맘 편히 가소

고생 많았소 그대여
그 억척스러웠던 고난의 길
잘 버텨냈구려
내일은 내일에게 내어주고 가소

돌팔매 걱정 마소 그대여
그대가 보여준 험난한 인생의 길
누구도 쉽게 흉내도 못하기에
속없는 들끊음 모두 앵앵거리며
지나는 소나기인 걸 모르오

손 한번 들어주고 잘 가소 그대여
정작 좀먹은 양심들은
가면 갈아 쓰며 잘 살 텐디
양심 살아있는 그대가
먼저 가고 마는 구려

우리 한없이 창피하라고…
세상은 본디 이런 것이라고…

[2020년 7월, 이상운] 

인간의 죽음은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숭고한 영역이다. 육체는 갔지만 남겨진 이들에게는 고스란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김현의 <행복한 책 읽기>에서 ‘나를 기억해줄 사람이 남아있다. 그들 속에서 난 살아있다. 그들이 끊임없이 날 그들 속으로 호명, 호출하고 날 또하나의 주체로 인식하게 하는 가운데 난 아직 사라지지 않고 죽어있는 것이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하물며 마녀사냥과 희생양이 되었던 무고한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소박한 양심 하나 붙들고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 안에, 예술과 삶의 둘레에 여전히 살아있다는 의미이다. 

환자들의 죽음과 사별가족의 사이에 닿아있는 상담가로서 부탁하고 싶다. 마지막을 선택한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돌팔매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심심한 애도의 공감이 겸연쩍다면 고이 지켜봄은 어떠한가. 매체를 오르내리던 숱한 희생자들을 기억한다. 나는 ‘더디 가시라’ ‘더디 사라지시라’ ‘울지 말고 가소 그대들이여’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에서처럼, 그대들이여 ‘아름다운 소풍 마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시기를. 그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기에. 

[*이상운 시인은 가족치료 상담가로 활동하며, (시집) ‘광야 위에 서다 그리고 광야에게 묻다’, ‘날지 못한 새도 아름답다’가 있다.]

*본 칼럼은 본보의 편집방행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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