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5월 2, 2024
spot_img
HomeOpinion기고 어머니의 유언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이상운 칼럼] 어머니의 유언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이상운 시인

  갤럭시 폰에서 ‘텍텍’하는 울림이 들렸다. 문자가 도착했다는 소리였다. 다른 알림 소리들을 ‘조용히’로 바꾸어 놓아서 신호음들이 입을 닫고 울리지 않는다. 손으로 찾아 들어가야만 수신을 알 수 있다. 오롯이 병원에서 연락을 주고받는 문자 신호음만 들린다. 응급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텍텍’ 소리는 나를 중환자실(ICU)로 인도했다. ICU에서 방문을 요청하는 문자가 왔기 때문이었다. 직원들과 가벼운 인사를 했다. 나의 유닛이 아니기에 ICU에 들어서면 매번 긴장을 하게 된다. 룸 번호를 확인하고 들어서려니 두 명의 간호원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창가 쪽에 자리한 소파에 환자의 가족이 자리하고 있었다. 책을 읽는 듯했다. 가까이서 보니 성경 책이었다. 

      그녀는 칠십 대 중반으로 환자 누나였다. 환자는 그녀보다 세 살이 어린 남동생이었다. 두 명의 오빠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남은 사람은 자신과 동생이라고 했다. 환자의 친가족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가족이 없다는 것은 독신이거나, 가족과 단절이 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환자는 숨을 헐떡이며 위급한 생과 사의 사이를 거닐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었다. 그녀가 믿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살아 날 수 있겠지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동생을 잘 보살펴라고 유언을 하셨어요.’ 또한 울먹이며 ‘나는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제 남동생만 남았는데 몸이 아픈 것이었다. 보호할 가족이 없는 칠십이 넘은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다른 곳이 아닌 자신의 딸 가족과 함께 말이다. 사위와 두 명의 손자들과 함께. 그녀는 손자들이 간호하는 것을 잘 도와준다고 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들이 이성적이라면, 이미 삼 년을 돌보았기 때문에 이제 되었다고 할 만도 할 텐데.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유언을 잘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다행히 자신은 아직까지 몸이 아프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폐가 안 좋아서 병원에 갔지만 지금은 문제가 없다고. 무릎이 조금 애리는 것 빼고는 좋다고 했다. 두 오빠를 먼저 보내고 이제 남동생마저 생사의 기로에 서있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 주었다. 손을 잡으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문을 나섰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병원 천장에서 비범한 방송이 내려앉았다. 친숙하지만 결코 달갑지 않는 ‘코드 블루, 코드 블루’였다. 문자의 신호음도 동시에 울렸다. 오전에 만났던 환자의 코드 블루였다. 발걸음을 재촉하니 코드 팀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환자의 누나는 동생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 옆에 앉아서 함께 있어 주었다. 코드 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동생의 심장은 멈추고 말았다. 그녀는 잘 안된 거냐, 고 나에게 몇 번을 물었다. 나는 잠시 주저하며 그녀와 팀을 번갈아 보았다. 차마 말을 할 수 없던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는 없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삼년여 동안 병치레를 했음에도 동생의 마지막이 몹시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유언을 잘 지켰다, 고 그녀를 위로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생을 안아주었다. 조금 진정된 후, 그녀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함께 있어준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몇 개월 전, 나는 연로하신 어머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소식에 불편한 마음으로 고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우리를 본 어머니는 다시 정신이 뚜렷해지셨다. 안해가 어머니의 발을 안마해드리자, ‘아프다, 만지지 마라’고 하셨다. ‘내일 다시 온다’고 하자, ‘바쁜데 뭐 하러 또 오느냐’고 하셨다. 둘째 누님에게 인사차 방문을 했을 때 누님은 마음속으로 계속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만약 요양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함께 갈 요량이었다. 우리도 돌아오는 비행기를 탈 때까지도 비상대기처럼 지냈다. 현재 어머니는 다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셨다고 한다.

      나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내 어머니의 유언은 무엇일까. 아직이겠지만 어떤 유언이 어머니에게 어울릴까.  어떤 말을 마지막에 하고 싶으실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에 차 오를 때, 불현듯 안해가 장모님에게 물었던 말이 생각났다. 장모님이 소천하시기 전에 일이었다. ‘엄마,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안해는 딸 많은 집에 막내로 아들을 낳았던 순간은 아니었을까, 답을 예측했다고 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장모님이 말씀하셨다 한다. ‘전쟁통에 헤어진 친오빠를 만났을 때’라는 것이었다. 장모님도 울고 안해도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우린 사람이면서도 정작 사람을 잘 모른다. 오랜 시간 함께 했다 해도 잘 알아차릴 수 없는 존재가 사람이다. 매번 양파를 벗기듯 새로운 면을 보게 되는 것이 사람인 것이다. 일촌광음의 순간에도 셀 수 없는 무엇이 머릿속에 교차하는 인간이기에, 한 두 문장으로 마지막을 요약한다는 것은 예초에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 어머니가 유언을 하신다면 어떤 말씀일까 생각해 보았다. 

너머 속 끓이지 말고 살어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냐고 묻는다
왜 나만 매번 이런 모양, 이 꼴이냐고 묻는다
왜 나만 이렇게 터져 만신창이가 되어야 하는지 되묻는다
왜 나면, 왜 나만, 왜 나만,
대답 없는 묻기를 헛물 키듯 되풀이한다
되돌아온 메아리가 나를 둘러서서
또 묻고, 또 묻고, 또 물어
엄마처럼 보듬어주며 속삭인다

내 막둥아! 너머 속 끓이지 말고 살어
시방이 지나면 모두 닞혀지는 뱁이여
니 맴이 펜하면 조은 것들만 기억난 단께
오널이 니 인생 제일 절믄 시방 이랑께
인생 벨거 없으야
내도 니그들 이리 낳고 밥 맥이너라
이래즈래 눈 찜끔할 새에 머리 희어지고
꼬브랑 할매가 되부렀단께
맴은 아적도 이빨 청춘인디 어떤다냐
내 강생아! 너머 잘허려고 애씨지말고 살어

[2019, 오하이오에서, 이상운]

  
    어머니가 막내에게 유언을 하신다면 ‘내 막둥아, 너머 속 끓이지 말고 살어’ ‘내 강생아, 너머 잘허려고 애쓰지말고 살어’라고 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바라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닐 것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어라는 말씀을 해보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공부 많이 하지 말라’고, ‘몸 축내지 말라’고, ‘배 골치 않고 잘 먹으라’고 입이 닳도록 하셨을 뿐이다. 

     아흔 후반, 어언간 백 년을 내다보는 어머니 눈에는 우린 아직도 이팔청춘일 것이다. ‘맴은 아적도 이빨 청춘인디 어쩐다냐’라고 하셨던 어머니의 말씀을 마음 한구석에 챙겨 담는다. 우리, 너머 속 끓이지 말고 살기를, 너머 잘허려고 애씨지말고 살기를.  

[*이상운 시인은 가족치료 상담가로 활동하며, (시집) ‘광야 위에 서다 그리고 광야에게 묻다’, ‘날지 못한 새도 아름답다’가 있다.]

*본 칼럼은 본보의 편집방행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Hot News
애틀랜타.미국
RELATED NEWS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World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Biz.Tech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오피니언

스포츠

부동산

K-POP

People

- Advertisment -spot_img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기획

남대문마켓 세일 정보

종교

한국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
- Advertisment -spot_i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