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5월 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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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 칼럼] 아직도 12척이 남아있음에, 오늘도 희망을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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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 시인

 ‘역사는 도전과 그 도전에 대한 응전의 반복’이라고 아놀드 토인비는 이야기했던가. 혼란의 상황이 도전(challenge)이며 그 도전에 응전(response 살아남음)하는 반복이 역사라는 것이다. 사회와 나라는 도전, 응전, 극복 또는 실패를 반복하며 거대한 뒤엉킴의 물줄기를 타고 탈현대까지 이르렀다.  

   시대마다 어렵지 않은 적이 있었겠는가마는 탈현대인들도 힘들기는 매한가지라고 볼멘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필자는 현시대를 난세(亂世 Turbulent period)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난세라 함은 불신, 혼란, 양극화, 재난, 전쟁으로 인하여 희망이 사라진 시대를 일컫는다. 20세기 후반에 세계화라는 이상으로 서로 손을 잡은 것처럼 보였으나 불과 반세기를 넘지 못한 채 검은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세계화라는 것도 허상에 가까웠으리라. 서로 눈속임을 하며 자축을 하는 동안 지구 곳곳에서는 삐걱대는 절규의 아우성들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탐욕의 독재자들이 백성을 압제했고, 정치적 분쟁으로 내전이 빈번했다. 경제적 빈궁에서 탈출하려는 이주의 행렬이 줄을 이었고, 끝도 없는 양극화와 분열은 심화되었다. 더불어 AI와 기후 위기까지 사람들을 외딴 절벽으로 몰아세운다. 이른바 난세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탈현대사회가 더욱 난세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문명이 가져다준 긍정의 빛도 있지만 그림자도 존재하는 법이다. 손바닥 안에서 실시간 소식은 대륙을 넘나들던 상인들과 대양을 항해하는 무역선들이 전해주던 소식들과는 달랐다. 보부상들이 전해주던 오일 장터의 소식과도 차별화된다는 의미이다.  빛처럼 빠른 속도는 편리함보다는 불편한 구석이 있다. 굳이 몰라도 되는 소식들까지 알게 되는 스트레스가 괴롭히기 때문이다. 현시대는 도전에 대한 응전의 시공간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응전이 없으니 극복은커녕 실패를 반복적으로 덮어쓰기 하고 있다. 편리함이 불편함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이랄까. 응전의 기회가 박탈된 스트레스가 겹겹이 쌓인 꼴이다. 

   답답한 것은 난세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람들의 캐릭터들이다. 그 사람들은 탁상공론을 즐기고 분열을 조장한다. 말만 늘어놓은 떠버리들이며 대화가 불가한 외골수들이다. 분열을 조장하여 사적 이득을 노리는 간신들이며, 이념으로 시대를 농락하는 명분론자 들이다. 슬픈 것은 난세 언저리에서 기생하는 부류들이 현재에도 지구 곳곳에 많다는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임진왜란이라는 난세에도 감 놔라 배 놔라식 탁상공론을 밥 먹듯 했다. 칼을 들고 전투하는 것  대신에 파벌싸움을 즐겼다. 사적 집단의 이익을 위해 모함을 서슴지 않았던 간신들이 많았다. 무죄추정이나 유죄추정이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죄가 없어도 새로운 죄를 덮어씌우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찍은 사람은 무조건 죄인으로 만들었다. 그 피해자가 바로 이순신 장군이었다. 

   당시 왜란의 길을 활짝 열었던 무능한 지배층들은 이순신을 경멸했다. 그렇지만 이장군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명나라 장수 진린은 “이순신은 천지를 주무르는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주와 나라를 바로잡는 보천욕일(補天浴日)의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라고 평가했다. 왜군의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가장 흠숭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다.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영국 제독 조지 알렉산더 발라드는 그의 책 ‘일본 정치사에서의 해양의 영향’ (1921)에서 “영국인의 자존심은 그 누구도 넬슨 제독과 비교하길 거부하지만, 유일하게 인정할 만한 인물을 꼽자면, 한반도의 이순신 공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실수가 없었으며,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완벽해 흠잡을 점이 전혀 없을 정도다”라 적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치를 깨우치지 못한 일부 서인 세력들과 선조는 이순신 장군을 모함하여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시켰다. 그들은 같은 서인 측 장수인 원균을 그 자리에 임명했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원균은 보란 듯이 칠천량 해변에서 대패했다. 조정은 다시 이순신을 복귀시켰지만 이제 수군을 폐지하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장계를 올렸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남아 있나이다. 죽을 힘을 다하여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수 있사옵니다. 비록 전선의 수는 적지만 신이 죽지 않은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후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12척의 함선으로 일본 수군 133여 척을 무참히 격퇴했다. 이를 계기로 왜란의 상황은 급반전되었다. 난세에 어떤 이는 명분을 위해 탁상공론을 즐기고 모함을 서슴지 않는다. 반대로 어떤 이는 말없이 작은 행동을 한다. 난세에는 어떤 사람이 필요할까. 조정 대신들의 이권 장난질에 피해자였던 이순신 장군은 어떠했을까. 그는 삶의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플로리다 파나마시티 비치에서 기거할 때 일이었다. 걸프만에서 폭풍우가 몰려오는 날, 검은 구름이 대재앙이라도 암시하듯 하늘을 뒤덮었다. 새들과 햇빛도 숨어 매서운 바람만 불던 하늘에 매 두 마리가 비상하고 있었다. 무척 초연한 날갯짓이었다. 그 순간을 놓칠 수 없어 글로 남겨 놓았다. 

난세에 영웅이

범 없는 굴에 여우가 대장이었던가
영웅이 사라진 시대에 말쟁이들만
난장을 피우며 거들먹거린다

된바람이 세차게 몰아쳐오고
검은 구름이 뒤덮인 하늘에
여우 같은 쫌새들은 어데 가고
매 두 마리만 덩그러니 하늘을 난다

두 날개를 활짝 펴
세찬 된바람을 즐기는 듯
초연한 날개짓으로  
유유히 정찰하며 창공을 누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거센 되바람 덕에 쫌새들은 도망치고 
말 없는 매만 차디찬 하늘을 지킨다 

[2022, 폭풍우 부는 날 – 플로리다 비치에서]

    이순신은 폭풍우 치는 난세를 알았던 것인가. 초연한 자세로 전쟁에 임했다. 그는 영웅이 되고 싶어 했을까. 당시의 문화에서 영웅이 되려면 아부를 잘해야 하고 줄을 잘 서야 했다. 그는 그런 조악한 유명과 권력에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하늘은 난세에 영웅을 내리는 것은 아닌지. 난세의 영웅은 말 많은 쫌새들이 도망친 차디찬 빈 하늘을 초연하게 누빈다. 두 날깨를 활짝 펴 세찬 된바람을 맞는다. 거들먹거리던 여우 같은 쫌새들이 사라진 하늘에서 말이다. 

    난세에 많은 지구 사람들이 희망이라는 단어도 사치인양 여긴다. 그들에게 영웅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이 될 수 있기에. 난세의 영웅은 ‘아직도 우리에게 12척의 배가 남아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 영웅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모함이 아니라 존중으로, 거들먹거림이 아니라 겸허함으로, 외형이 아니라 내면으로, 압제가 아니라 평화로, 뒤꽁무니가 아니라 앞장설 것이다. 자칭 영웅이 되어 억지스러운 ‘봄’날을 만든 압제자가 아니라 타칭 영웅은 소중한 12척의 가치를 알고 백성들과 함께 할 것이다.  

    난세를 맞이한 민족과 공동체에게 참신한 영웅이 나타나 희망이 되어주기를 바라본다. 그 영웅을 돕는 소박한 12척의 배가 되려는 사람들도 함께 나타나기를. 아직도 12척이 남아있기에, 오늘도 다시 희망을 논하고 싶다.

[*이상운 시인은 가족치료 상담가로 활동하며, (시집) ‘광야 위에 서다 그리고 광야에게 묻다’, ‘날지 못한 새도 아름답다’가 있다.]

*본 칼럼은 본보의 편집방행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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