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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 칼럼] 뜨개는 따뜻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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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 시인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군고구마, 붕어빵, 어묵 국물이 그리운 계절이 왔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지,라고 했었지. 사계절의 뚜렷함을 몸으로 익히며 살았음에도 온화한 날씨를 더 좋아하는 걸 보니. 겨울은 따뜻해야 제맛이지,라고 바꿔야 할 것 같다. 변천해가는 인생의 굽이들이 흥미롭기만 하다. 동일한 해가 뜨고 지지만 지난 해와 올해가 다르니 말이다.    

  차디찬 북 장군이 위엄을 떨치면 사람들은 목도리, 손모아 장갑(구 벙어리장갑), 모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흥미롭게도 모두 뜨개로 엮어진 예쁜 털실 제품들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인류이지만 추운 날씨 속 사람들의 머리, 목, 손에는 모두 털실 뜨개가 덮여져 있다. 찬란한 기계와 디지털 문명이 발전해도 추위 앞 인간은 뜨개의 보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사랑하는 안해가 몇 주 전부터 뜨개질에 열심이었다. 궁금한 터에 물었더니 동생들의 반려견들을 위한 것이라 했다. 따뜻하게 겨울을 지내라고 강아지들 목도리를 뜨는 것이었다. 에코에게 직접 씌워가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안해의 명령을 받들어 나는 소포들을 버지니아와 캘리포니아로 보냈다. 뜨개 목도리를 한 녀석들을 떠올리니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산업혁명 후 비약적인 방직 기술의 발전은 옷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했다. 손쉽게 공급된 기성품들은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흥미로운 것은 기성품들 속에서도 사람의 손으로 뜬 것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기계에 비하면 사람의 작품은 어설퍼 보임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랑스러워하며 잘도 하고 다닌다. 왜 그럴까. 뜨개는 따뜻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주는 사람은 받는 사람을 위하여 노동과 시간, 마음과 소원을 담아 한 땀 한 땀 뜨개질을 했으리라. 이른바 따뜻한 사랑을 쓰고 다니는 것이다.       

   오랜만에 방문한 고국에서 장인어른은 장모님이 뜬 깔게들을 가져갈 것인지 물어보았다. 우린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마치 박물관에 전시될만한 예술 작품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뿌듯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싸늘한 한강의 바람이 몰아치는 늦겨울 어느 날이었다. 딸아이가 실 꾸러미와 뜨게 바늘을 들고 거실에 앉았다.  우리의 대화를 시로 남겨 놓았다. 제목은 ‘따뜻한 뜨개’이다. 

따뜻한 뜨개

한겨울을 활약했을 법한 / 실 한 꾸러미를 데려고 나타났다 / 강렬한 햇살이 만연한 시기의 뜨개라 / 궁금하던 차에 가벼운 인사를 건넨다

딸아이는 말했다 / ‘뜨개질은 서로 돕는 거래~’ / 꽤 연륜이 느껴지듯 뜨개질에 열심이다 / ‘왜’라고 물었다

‘양손에 바늘이 서로 도와주지 않으면 / 뜨개질을 할 수 없거든~’ / ‘엄마가 세상에 살아가는 것도 / 뜨개질처럼 서로 도우면서 지내야 한대~’ / 대수롭지 않게 말을 건넸다

딸아이의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에 / 내 마음이 따뜻해져왔다 / 황사의 발목에 잡혀있던 서울 하늘에 / 따사로이 찾아온 햇살처럼 말이다

[‘광야위에 서다 그리고 광야에게 묻다’ 중에서, 2017, 이상운]

    기성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뜨개는 경제성이 떨어지는 전근대적인 행위처럼 보인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야 완성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추위가 다가오면 뜨개질이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뜨개가 가진 성품 때문은 아닐까 싶다. 한 올 한 올 뜨개질을 하면서 뜨는 사람의 성품이 엮어지고 배어들기 때문이다. 뜨개는 따뜻한 사랑을 주고받는 매개체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뜨개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탈현대가 추구하는 목적과 속도에서 결이 다르다. 삶을 대하는 자세와 사고의 틀에서도 그렇다. 손쉬운 소비와 달리 느린 기다림과 지루한 인내가 필요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연구들에 의하면 뜨개질이 실버세대의 정신건강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스트레스 해소와 우울증 등에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며, 동시에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딸아이의 ‘뜨개질은 서로 돕는 거래’라는 표현이 안온한 깨달음을 주었다. ‘세상에 살아가는 것도 뜨개질처럼 서로 도우면서 지내야 한 대.’ 백번 천 번 옳은 표현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쉽게 잊고 사는 부분은 아닌지. 딸아이의 말이 화두가 되어 아려온다. 나의 삶을 어루만지며 되돌아보게 한다.   

    너와 나에게 뜨개는 어떤 것인가. 나에게 뜨개는 인생의 길잡이처럼 다가왔다. ‘따뜻한 뜨개’는 방향이 다른 사유의 길로 나를 인도했다. 만약, 인생의 정석이 있다면 뜨개를 통해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뜨개의 정석’이라는 시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뜨개의 정석

한 올 한 올 뜨다 보면 / 하나의 완성품이 되듯이 / 예상치 않은 모양일지라도 / 모두 애정 어린 작품들이다

세월을 꾸러미 속에 뜨듯이 / 얽히고 설켜 모양을 갖추듯 / 서로 도우며 하나의 작품이 되듯이 / 뜨개는 계속될 것이다

너에게 나는 하나의 바늘이 되고 / 나에게 너는 하나의 실이 되고 / 우리 앞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 뜨개로 엮어질 아름다운 관계들이다

설사 코가 빠져 비뚤어지고 / 얼키고 설켜 있을지라도 / 뜨개하는 이의 열정과 사랑이 / 다시 시작하게 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뜨개의 여정을 / 서로 도우며 함께 나누며 / 서로 일으켜 세우며 / 가고 싶은 날이다

[‘광야위에 서다 그리고 광야에게 묻다’ 중에서, 2017, 이상운]

   뜨개는 인생의 바른길을 가르치는 멘토 같다. 나는 타인의 바늘이 되고, 타인은 나에게 실이 된다. 만나는 사람들을 따뜻한 뜨개로 엮어질 아름다운 관계로 인지한다면, 이보다 멋진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예상치 못한  인생의 변곡점에서 얽히고설키고, 삐뚤어졌다 해도 우리 자포자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차피 뜨개는 서로 엮어지는 것이기에 얽히고설키게 되어있다.

우리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삶의 열정과 사랑이 남아있다면 우린 다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도우며 나누며, 서로 일으켜 세우며 가는 것이 인생의 여정이 아니겠는가.  

[*이상운 시인은 가족치료 상담가로 활동하며, (시집) ‘광야 위에 서다 그리고 광야에게 묻다’, ‘날지 못한 새도 아름답다’가 있다.]

*본 칼럼은 본보의 편집방행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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