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6월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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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 칼럼] ‘가장 먼 여행’을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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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 시인

‘여행’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설레임을 준다. 여행이 주는 긍정적인 영향력 때문일 터이다. 여행이라는 것도 살만해진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모든 나라와 사람에게 여행의 권리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여행이라는 기회도 대륙이나 나라별로 심한 격차를 보인다. 이것이 AI 시대를 내다보는 인류의 현실적인 한계들일 것이다. 이른바 로봇이 인간의 삶을 도와준다고 해도 일부에게 국한되거나, 살만한 나라에 집중될 가능성이 많다. 역사에서 매번 그랬던 것마냥. 

여행은 필수처럼 부추기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여행을 격하게 사랑하는 부류에 속한다. 대조적으로 나의 안해는 일주일 동안 문밖을 밟지 않아도 행복하게 여기는 갈래이다. 즉 여행을 즐겨 하지 않는 사람도 허다하다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쇼핑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모임에서 유쾌한 만남을 갖는 것이 멋진 삶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어떤 이들은 안온한 집에서 쉬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밖에 나가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기에, 집에만 있으려는 사람에게 재미없는 삶이라거나,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는 등의 어설픈 충고는 무례한 행동이 될 것이리라.  

만일 인생을 여행의 거리로 따진다면 당신은 어떤 여행을 꿈꾸는가? 물리적 거리라면 어디가 제일 먼 여행이라고 생각하는가? 여행을 꿈꾼다면 어디까지 멀리 떠나고 싶은가? 가령 나 자신을 찾는 여행이라면. 

우연히 권비영 작가의 단편소설 <척박한 나의 정원>을 읽었다.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았던 오복자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식들을 번듯하게 키웠음에도 자기들 삶에 정신이 없어서 그녀는 뒷전이었다. 밖으로만 나돌던 할아버지는 평생 도움이 되지 않더니, 결국 젊은 다방 여자와 도망을 갔다. 재산도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꼴에 남았던 전답과 집도 젊은 여자에게 뺏겼다. 

지지리도 복도 없어 보이는 복자 할머니는 모든 것을 잃었다. 다행히 아버지의 유산인 돌이 잔뜩 묻힌 산등성 땅이라도 남아있었다. 컨테이너를 세워 농막에서 혼자의 삶을 즐기면서 살았다. 79세가 되어 비로소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녀는 돌을 골라내며 척박한 밭을 일구었다. 작물을 수확하고 장에 내다 팔았다. 돈이 생기면 소금 독에 묻어 놓았다. 어쩌다가 다리가 다쳐 병원에서 깁스를 한 후에 큰 결단을 하게 된다. 누구 하나 그녀를 위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바람 나서 집을 떠난 남편도, 깁스한 자신을 보며 가을 수확물을 운운하는 자녀들에게도, 다시 농사지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친구들도, 모두에게 환멸을 느꼈다. 

팔십 가까운 인생에서 자신을 위한 번듯한 것이라고 하나도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가 농사를 다시 지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그녀는 다신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리곤 자신의 장례식을 위한 쌈짓돈과 소금 독의 돈을 합쳐서 유럽여행 티켓을 구입했다. ‘더 늦기 전에’ 자신을 위한 무엇인가를 하기로 맘을 먹은 게다. 그녀는 종묘 가게에서 온갖 꽃씨들과 묘목을 구입했다. 척박한 산등성이에 꽃과 나무를 심을 요량이었다. 척박한 자신의 정원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더 늦기 전에. 

단편을 읽으며 오복자 할머니가 이제 소녀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평생 바깥으로 나도는 남편 뒤치다꺼리 하다가,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다가, 고왔던 손이 거북이 등이 되었다. 남은 것이라곤 팔십이라는 나이에, 가을 추수를 기다리는 자식들 밖에는 없었다. 그곳에 그녀 자신은 없었다. ‘이제 농사를 짓지 않는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반항처럼 보이지만 잊힌 꿈을 향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신영복 선생의 <담론>이라는 책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라 합니다. 사상(cool head)이 애정(warm heart)으로 성숙하기까지의 여정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이며, 현장이며, 숲입니다.’라는 글이 인상적이다. 

인생이란 여행에서 나 자신은 지금 어디 즈음을 서성이고 있을까 생각했다. 아직도 머리인가? 가슴까지 가기는 했던가? 발까지 도착한 어떤 여행이라도 있었던가? 여정의 자취들을 뒤적이며 되새겨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부, 명예, 권력 등을 위해 인생을 바쳐 긴 여행을 해왔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당신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미소 띠며 다행이라고 여긴다면 감사할 터이지만 어찌 사람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겠는가? 혹여 나 자신을 찾는 여행이라면 당신의 여정은 어떠했는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인생 팔십을 목전에 두었던 오복자 할머니처럼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지는 않는지, 슬그머니 묻고 싶다. 인생에서 당신 자신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없다면, 더 늦기 전에 여행을 떠나봄이 어떠한가?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했듯이, 머릿속에 꿈꾸었던 것들을 가슴과 발로 실천해 봄이 어떠한가? 실패 까짓것 두려워하지 말자. 해보지 않고서 후회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싶다. 더 늦기 전에 나 자신을 위한 ‘가장 먼 여행’을 떠나보자.

[*이상운 시인은 가족치료 상담가로 활동하며, (시집) ‘광야 위에 서다 그리고 광야에게 묻다’, ‘날지 못한 새도 아름답다’가 있다.]

*본 칼럼은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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