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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 칼럼] 묻지마, 이제 자연의 묻지마 반격의 시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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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 시인

최근에 ‘1.5’라는 숫자와 ‘묻지마’라는 단어가 매체에 자주 등장한다.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지구 기온이 5년 이내에 1.5도 이상 상승할 것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숫자로서 1.5는 그리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지구 온도에 대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도가 1.5도 상승하면 지구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섬뜩한 경고들이 겹겹이 쌓이는 이때에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은 무엇인가.  모두 나열할 수도 없는 자연재해들이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머릿속에 기억으로 저장되기도 전에 새로운 기록을 경신했다는 뉴스가 매일 귀를 찌른다.    

‘묻지마’라는 단어는 21세기에 들어 ‘묻지마 범죄’라는 신조어로 매체를 달구고 있다. 묻지마 범죄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어떤 목적 없이 행하는 범죄를 일컫는다. 이 현상은 다각화되어 증오범죄(Hate Crime)까지 낳았다. 뉴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인종 갈등으로 인한 2021년 증오범죄가 1만 840건으로 전년도 비해 35% 증가했으며, 성소수자와 종교 증오 범죄도 28-54% 증가했다고 전하고 있다. 

묻지마 범죄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개인의 심리적 영향, 가족관계의 역기능, 사회적 부적응에 따른 악영향으로 발생한다. 그런데 필자가 흥미롭게 주목하는 원인은 바로 인류 문명이다. 찬란한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는 21세기에 도드라지는 범죄유형이기 때문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문명에 부적응하는 세대들이 많아지고, 관계의 단절과 심화되는 양극화로 인하여 절망적인 현실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펼쳐진 세상은 희망찬 유토피아(utopia)는 별나라 이야기가 되고, 기회조차 박탈된 디스토피아(dystopia)로 인식하고 있다.  

올해 7월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발표했다. 1.5도 상승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감히 누구도 말하기를 주저한다.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예상컨대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흐를 것이다. 자연 생태계도 눈물을 흘리며 소멸될 것이다. 

지구 열대화에 따른 자연재해의 원인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찬란하고 화려한 인류 문명이다. 산업혁명 이후에 인류는 성장만을 외치며, 소비혁명을 장려하고, 찬란한 업적을 자축했다. 자연과 소통하지 않고 인류는 묻지마 개발, 남용, 오용을 무차별적으로 일삼아왔다. 산업혁명 250여 년이 지난 후, 플라스틱 등이 개발된지 반백년 후에 지구는 성장을 멈춰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이제 탈성장의 시대를 억지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탈성장 탈소비의 시대를 강제적으로 살아야만 향후 몇 십 년을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필자는 현시대를 ‘자연의 묻지마 반격의 시대’라고 명명하고 싶다. 자연에게 묻지 않고 묻지마 개발과 남용에 따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제 자연 생태계의 묻지마 증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묻지마 범죄와 묻지마 반격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무작위성(無作爲性)이다. 무작위성이란 어떠한 범죄 사건에 예측이 불가능하고, 특정한 패턴이 없는 경우를 의미한다. 즉 불특정 다수를 향하여 발생한다는 것이다. 

과연 인류는 자연에게 맞설 수 있을까? 묻지마 반격의 무작위성은 조금 앞선 나라와 뒷선 나라를 구분하지 않는다. 담을 높이 쌓아 올린 사람과 변변한 담장도 없이 사는 사람도, 많이 배운 사람과 적게 배운 사람도, 겉이 멋진 사람과 왜소한 사람도 구분하지 않는다. 무작위성은 곧 무차별성이다. 어느 누구도 맞짱은커녕, 반격에 버텨낼 재간이 없다. 현재 우리는 자연에게 카운터펀치를 연달아 얻어맞고 있다. 얼마나 더 강한 펀치가 날아올 것이며, 몇 번을 더 쓰러져야 할지 누구도 모른다. 넘어짐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 못내 두렵기만 하다. 

인류를 향한 자연의 ‘묻지마 증오의 앙갚음’이라고 표현한다면 너무 억측인가? 자연에게 겸허히 묻지 않았던 인류를 생각하면 이런 표현도 모자람이 없다. 그저 자연을 달래며 함께 상생할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자연을 맛보아라’고 부탁하는 고 천상병 시인의 ‘자연의 은혜-서울의 소년 소녀들에게’라는 시를 들려주고 싶다.  

애들아 들어라 / 이 할아버지의 말을 들어라. 
지금은 12월 겨울이지만 / 이윽고 내일 / 봄이 온다. 
자연은 커다란 문을 열고 / 자연의 은혜를 / 활짝 열어 줄 것이다.  
산이나 들에 / 꽃이 만발하고 싱싱한 나무가 / 너희들을 맞이할 것이다. 
자연의 은혜는 / 너무도 넓고 기쁘다. 
시골에 가서 / 그 자연의 은혜를 / 맛보아라. 
                                                                  [‘자연의 은혜’ 전문, 천상병 시인, 1930-1993]

‘자연의 묻지마 반격은 지구의 자정과 회복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인류를 향한 묻지마 증오의 앙갚음인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해서 뉴스를 보고 한숨만 내쉬는 것에서 이제는 한 걸음만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자연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봄이 어떠한가. 자연의 은혜를 사유하며 존중과 상생의 길을 작게나마 찾아봄이 어떠하냐는 말이다.   

*이상운 시인은 가족치료 상담가로 활동하며, (시집) ‘광야 위에 서다 그리고 광야에게 묻다’, ‘날지 못한 새도 아름답다’가 있다.

본 칼럼은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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