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우칼럼] 동포사회속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공청회 談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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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우/재미 화가

*프롤로그

떠나가는 임인년 한해의 그으름판인 지난 11월 26일, 현지 동포사회 사유지인 한인회관내 평화의 소녀상 건립문제와 관련 찬반의견을 개진하는 ‘공청회’가 열린 바 있다.

이곳 북미주 조지아 애틀랜타 한인회 이사회가 주관한 공청회 당일 때마침 주말임에도 약70여명 남짓 동포들이 참여하여 소녀상 건립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함께 투철한 역사 의식을 드러 내 보여준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고 평가된다.

주최측은 공청회 개최직전 참석자들중 찬성과 반대의견 발표자로 각각 5명으로 제한하고 총 10명의 신청을 미리 받아 이경성 이사장의 개최선언과 함께 신청자들이 순서별로 나가 제각기 다양한 주장들과 소견들을 피력 했었다.

대부분 역사를 인식하는 보편적 상식에 기반한 공통적인 의견들로 읽혀지는 찬성쪽 주장들에 비해 반대의사를 펼치고 나온 발표자들의 주장들 속엔 다소 ‘역사인식’의 오류와 더불어 소녀상에 대한 본질적인 ‘몰이해’가 짙게 깔려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인지하는건 그다지 어려운일이 아니었다고 소회된다.

반면, 현지 동포사회 사유지에 소녀상 건립을 찬성하는 이들의 의식속엔 역사를 바로알고 후세들이 ‘반면교사’로 삼아 참혹한 흑역사의 되풀이를 막아야 한다는 명확한 ‘대의명분’이 확고히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하는 일또한 한낱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라 할지라도 전혀 인지못할 까닭이 없었다.

무엇보다 소녀상 건립을 반대하는 이들의 뇌리속엔 “부끄럽고 창피한 역사를 들추는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자조적인 믿음들이 확고하게 뿌리박혀 있음으로 읽혀졌다.

더불어 한•미•일간 정치적 갈등을 불러일으킬수 있다는 궤변들과 함께 ‘역사인식’의 오류를 넘어 마치 ‘가해국’인 일본측 주장에 경도된 우편향적 ‘식민사상’에 중독된 ‘사고결핍’ 으로 가득차 있는 듯한 속내들을 아무런 꺼리낌 조차 없이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준것은 심히 유감천만한 일이었다고 사료된다.

그밖에도 한인회관 부지가 특정개인이나 단체소유가 아닌 만큼, 회관내 소녀상 건립이 바람직하지 않다거나 혹자는 과거 월남전에서 한국군이 한 일들과 더불어 소녀상 건립이 문재인 정부의 주요사업 이었다는 둥, 뜬금없는 사실왜곡도 모잘라 소녀상 건립이 윤석열 정부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는 어이없는 뇌피셜에 이르기까지 한낱 진영에 매몰당한 사고와 왜색풍 일색의 ‘식민사상’에 찌든 망언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해 대다수 참석자 들로부터 집단적인 야유를 이끌어내기도 했었다.

각설하고 뒤늦게나마 필자가 지난 공청회 분위기를 애써 톺아보기 하게된 곡절는 한낱 궤변일색의 소녀상 건립 반대자 들 주장에 따른 비판이나 개인적 찬반소견을 피력키 위함 이라기 보다는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있는 ‘소녀상’을 향한 본질적인 ‘사고결핍’과 왜곡된 역사인식에 대한 바로잡기 차원 이라고 밝혀둔다.

소위 ‘삼척동자’들도 다 알고있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의 참 의미를 왜곡치 않고 바로 아는 것이야말로 소녀상을 놓고 한사코 한일간에 얽힌 골깊은 정치적 갈등으로 몰아가려는 악의적인 반대론자 들과의 한낱 소모적인 논쟁들을 끝낼수 있는 유일한 ‘출구전략’이 될수 있다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평화의 소녀상 조형물 건립의 의미는 ‘2차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주도한 강제동원령에 징발당해 위안부 ‘성노예 (sexual slavery)’가 되었던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필리핀’•’중국’•’한국’•’대만’ 등등 주로 동아시아권 전역에 분포한 수십만에 달하는 연약한 피해여성들의 참혹한 희생을 기리고, 아픈 과거사를 결코 잊지않고 기억함 으로서 ‘반면교사’로 삼아 두번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데 있다.

더불어 일제만행으로 짓밟힌 위안부 여성들의 ‘인권유린’ 참상을 고발•규탄하고 국제사법적인 단죄를 통해 가해국인 일본정부의 공식사죄와 배상책임을 촉구함으로서 생존해 있거나 이미 고인이된 피해여성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나아가 국제사회가 공동체적으로 지향해 마지않는 평화와 인권, 그리고 화해의 메시지까지 담은 ‘기림비’나 ‘평화비’ 라고도 불리워지고 있을만큼 세계평화와 인권존엄을 상징 하는 문화예술적 조형물에 다름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지닌 좀더 주목해야 할 논점은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징발되어 성을 유린당한 비단 한국여성 만을 특정화한 조형물이 아니라 수십만에 달하는 동일한 피해국 여성 전체를 포괄하는 ‘기림비’적 성격을 가진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초 인류적인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존엄한 사실에 있다고 할만하다.

이문제와 관련 일제만행을 규탄하고 국제사법적인 책임을 촉구하는 법안이나 성명서들을 지구촌 각나라 의회들과 인권옹호를 지향하는 수많은 국제연합 기구들이 이미 오래전 부터 명시적으로 공표하고 공동체적으로 명문화 시켜오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평화의 소녀상 조형물이 상징하는 이같은 명료한 의미외에 반대자들이 일방적으로 주장해 오고있는 소위 우리나라가 일본에 정복당했던 치욕의 과거사 관련 정치적인 이해충돌의
문제들을 소녀상에 뒤섞어 물타기 하려는 뻔한전술은 정작 일본내 극우세력들이 벌여온 숭악하고도 ‘후안무치’적인 간교한 외교술책에 다름 아니었던 게다.

위안부 관련 하등 관계가 없는 국가들까지 나서 공론화하여 공동체적으로 대응하고 일본정부의 공식사과와 함께 국제 사법적 책임을 촉구하고 나설수밖에 없는 실질적인 사유가 무엇인지? 소녀상 건립에 부정적이라면 반드시 ‘팩트체크’하고 상식과 양심에 기반해 겸허하게 성찰해 볼 일이다.

‘위안부’ 문제가 한낱 지배국과 피지배국 사이에 얽힌 ‘이해충돌’적 사안속에 소급된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라면 결코 국제사회가 공동체적으로 개입하고 나설 이유도 명분도 없으리란 상식논리에 공감할수 없다면 만인을 설득할수 있는 보다 합리적인 사유들을 찿아 내밀던지, 그게 안된다면 더이상 이문제에 끼어들어 어설픈 선무당 칼춤으로 스스로 가십거리의 중심에 서있을 까닭이 당췌 없질 않겠나?

결론적으로 우리가 소녀상 건립에 대한 찬반의사를 피력하기 이전에 소녀상을 향한 국제사회가 공동체적으로 널리 인식 하고 공동대처 해오고있는 사실들에 대한 명확한 ‘팩트체크’ 부터 하는게 자칫 토왜취급을 당할수도 있는 불명예속에서 스스로를 방어할수있는 유일한 길이 될것이다.

재외 동포사회의 사유지인 ‘한인회관’은 본국 정부의 정치적 이거나 행정적 공권력이 미치는 공식 산하기관이 아니라 한국계 소수민족의 민간 커뮤니티 문화쎈터일 뿐이다.

따라서 이같은 성격을 가진 재외지역에 위치한 ‘한인문화쎈터’에 ‘이순신’장군이나 ‘김구’선생같은 역사적 위인들로 특정화된 개인 동상물을 세우기 보다는 ‘평화의 소녀상’같이 불특정된 인류사적 ‘기림비’ 성격을 띤 조형물을 세우는것이 훨씬 더 유용하고 최적화된 장소라는 사실을 동포사회가 재인식 할수있기를 삼가 권면하고 간절히 소망해 마지 않는다.

*에필로그

바야흐로 과거를 망각하거나 왜곡하는 이들에겐 오늘의 ‘실존(實存)’역시도 거짓으로 포장된 픽션의 삶이 될수밖에 없다.

까닭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은 무심코 듣고 단순히 지나칠 워딩이 아닌 ‘불변’의 참 ‘진리(眞理)’라는 존엄한 사실을 마지막으로 적시하면서 부족한 필자의 소견을 이만 갈무리하는 바이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행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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