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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 칼럼] ‘그럴 수밖에 없음’은 희망인가, 아니면 포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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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 시인

전지영의 단편 <쥐>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안으로 들이쳤지만>을 읽고 난 후. 

매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려는 사람들은 마치 올림픽 선수들처럼 갈고닦으며 준비한다. 등단이라는 용어가 없는 외국을 예를 들며, 등단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은 줄 안다. 그럼에도 전통이라는 용어를 들이대며, 경직된 줄 세우기를 즐기는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먹히는 붙박이 등용문일 게다. 이런 배경을 깔고 앉은 2023년 신춘문예에서 전지영 작가는 2관왕을 차지했다. 단편 <쥐>가 조선일보에, 단편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안으로 들이쳤지만>이 한국일보에 당선이 되었다. 동시에 특이점은 한예종 출신 4명이 한 해에 당선되었다는 점이다. 

최근에 초단편 소설에 관심을 가지던 차에, 단편 소설은 어떤 흐름을 쫓아가는지 궁금했다.  전지영의 소설  <쥐>을 먼저 읽어갔다. 흥미로운 주제처럼 보였으나 들여다보니, 다름 아닌 거대 조직이 진실을 은닉하려는 이야기였다. 누구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조직의 옷을 벗고, 누구는 진실 대신에 권력에게 순응코자 암묵의 길을 선택했다.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머릿속에는 세월호를 얽어매었던 검은 먹구름, 비바람, 천둥 같은 권력들이 그려졌다. 구조 이전에도, 구조 중에도, 구조 후에도 인간의 존엄성에는 관심조차 없는 조직들이었다. 숨기고 감추는 것에 최적화된 조직들, 소설의 배경에서는 해군이었다. 특히 선박의 충돌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기에 가늠할 수 있었다.

거대 조직 안에서 기생하는 계급사회의 폐쇄된 복종의 문화 때문이었던지, 실핏줄까지 조여 오는 듯 먹먹해졌다. 권력과 조직 안에서는 어떠한 진실도 존재해서는 안 되는 모양이었다. 오롯이 그들의 이권을 위해 감추라,는 명령만이 진실이 된 셈이다. 진실이 무소불위의 진상으로 탈바꿈되어 누구도 건드려서는 안되는 영역이 되고 만다. 마치 경멸하는 쥐를 없앨 수 없듯이. 드러나지 않는 권력, 부조리, 불안, 공포를 상징하는 쥐를 잡기 위해 결국 광기를 태워 불을 지르고 만다. 진실을 밝히는 사람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쥐를 죽이기 위해 불을 지른 사람도, 배경을 채우는 눈치들도, 풀리지 않는 질문들만 덩그러니 놓고 사라졌다. 해결의 실마리는 가출하고, 칠흑 같은 혐오와 의심의 공간에서, 실체와 허상을 찾아 규명해야 할 몫은 독자를 포함한 후대에게 남겨졌다. 

전 작가의 다른 당선작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안으로 들이쳤지만>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일상의 새새를 쪼개어 단숨에 읽어갔다. ‘혜경은 매일 새벽 총을 쏘러 다녔다’는 첫 문장이 비범했다. 이것 어디로 흘러가려는 거야, 머릿속에서 불꽃놀이를 하듯 이리 저리 튀기 시작했다.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어쳤지만, 둘 중 누구도 창문을 닫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매일 새벽 총을 쏘러 다녔다,는 것이 이해되어야 한다. 아이의 죽음은 가족, 특히 부부에게 큰 재앙이 되었다. 아픔, 증오, 죄책감 등이 뒤섞여 시간은 흐른다. 들쳐오는 빗물이 보였지만 누구 하나 닫으려 하지 않는다. 뭣이 중요한디,라는 표현이 머리를 스친다. 그래, 뭣이 중요한디. 사랑이란 말도, 정이란 말도, 졸아붙은 청국장의 바닥을 보였지만, 그들은 헤어지지 않았다. 대신에 함께 말없이 밥을 비벼 먹는다. 부모에서, 부부로, 이제는 서로 거리를 두며 견뎌내는 존재로 살아간다. 예민한 선을 건드리지 않는 것을 서로 알듯이.

한 생명이 가족에게 내려진 것은 축복이다. 사람은 선물처럼 가족에게 왔고, 예고없이 훌쩍 떠난다. 그 떠남은 곧 재앙으로 돌변하고 만다. 누가 보내고 누가 데려가는가. 가족 중에 누군가 결정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라짐을 견뎌내야 하는 쪽은 매번 가족들이다. 인생 가운데 겪어야 할 통과의례처럼 빤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접하는 모두는 어려운 것이리라. 전 작가의 단편 소설이 나에게 말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훌훌 털어버리자,는 말도. 그들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을 테니. 

전 작가는 당선 소감에서 “또한 소설을 통해, 누구에게나 ‘그럴 수밖에 없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위안 받았다’라고, ‘위안을 넘어, 소설 속 인물이 안녕하시기를’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난간에 부딪힌 비가…>를 통해 ‘부모의 삶을 이해하고 싶어 썼다’고 덧붙였다. 그녀가 꾹 눌러 말한 ‘그럴 수밖에 없음’은 희망인가, 아니면 포기인가. 이 질문에 나는 희망이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음악을 전공했던 그녀가 절망 앞에서 선회한 글쓰기였던 것처럼,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39세에 세상에 빛을 보았듯이, 희망이어야 하리라. 사그러져가는 이야기의 불씨를 작가는 되살렸고, 독자들이 해야 할 소박한 일들만 남았다. ‘그럴 수밖에 없음’은 자포자기의 마침표가 아니라, 한숨을 몰아쉰 후 다시 일어서는 시작이 될 테니까.  

[*이상운 시인은 가족치료 상담가로 활동하며, (시집) ‘광야 위에 서다 그리고 광야에게 묻다’, ‘날지 못한 새도 아름답다’가 있다.]

*본 칼럼은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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