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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 칼럼]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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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 시인

소설가 한수산의 <사람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를 읽고 난 후. 

책이 사람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 기어코 어떤 지식을 얻겠다는 지엄한 강박만 뒤로한다면, 책은 사람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매력 덩어리가 된다. 단지 인쇄된 종이에서 멈추지 않으려는 책의 엉뚱 발랄한 성품 때문일 게다. 소설가 한수산의 에세이 <사람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를 느린 숨으로 야금야금 씹듯이 읽었다. 처음 나의 인상을 훔친 것은 고상하게 꾸민 책의 만듦새였다. 덕질하지 않은 표지며, 질감이 다른 속지며, 책 사이에 서양화가 이순형의 그림이며. 하나의 단아한 작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여타의 책들보다 더 신경 써 다루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들었다. 접기에도 미안할 만큼의 질감이랄까. 안해에게 와, 이 책 잘 만들었다,라고 했으니,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것이다.  

책의 속표지에, ‘여행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상처가 남았다. 그 상처로 신음하다가 딱지가 앉을 무렵이면 또 떠났었다. 사람을 만나러, 사람을 그리워하며’라는 문장이 턱하니 버티고 있었다. 사유 없이 넘기지 말라,는 의미였을까. 그도 그럴 것이, 상처, 신음, 딱지라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은유들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딱지가 앉을 무렵에, 또 떠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갑갑궁금해졌다. 그리운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혹시 역마살이 작가를 휘감고 있지는 않나,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한 소설가는 바쁜 일상에서 고군부투하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멈춤을 선사하는 것 같았다. 현재가 의미 있도록 지지했던 스승들에 대한 기억을 그리움으로 담아냈다. 그의 스승이었던 박용주 선생에 대한 애틋한 이야기들은 부러움과 아련함을 겹쳐 주었다. 하늘을 나는 연을 비유하면서, 자신은 실이었고 선생은 얼레였다,는 표현에서 울컥했다. 스승을 향한 고매한 존경의 은유가 이보다 더할 수 있을까 싶었다. 더불어 원고를 읽고 평을 해 주었던 황순원과 박목월 선생에 대한 일화들도 소개되었다. 

그에게 빠질 수 없는 것은, 1981년 5월에 일어난 ‘한수산 필화 사건’이었다. 그가 중앙일보에 연재한 소설 <욕망의 거리>가 제5공화국의 전두환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그를 비롯한 6명의 문인들을 무참하게 고문을 가했다. 당시 보안사 수장이 대통령이 되려는 것이 보기 싫어 그는 일본행을 선택했다. 터무니없이 불합리한 일들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숱하게 일어났던 암울한 시대였다.
 
피신한 그곳에서 그는 오매불망하던 스승의 부고를 들었다. 아들과 함께 숲을 걷다가, 그는 맥주병을 바위에 올려놓고 왔다. 아들이 아빠, 맥주를 가지고 가야죠,라고 물었다. 그는 오늘 아빠의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그건 선생님 드리시라고 두는 거야,라고 말했다. 아들이 캄캄하고 무서운데, 어떻게 여길 알고 와요,라고 물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오실 거다, 이제 선생님은 무서운 것도 없고, 아픈 것도 없고, 먼 것도 없고, 싸워야 할 것도 없어졌으니까,라고 답했다. 아름다운 사제 간이었다. 그런 스승도, 그런 제자도 흔치 않을 터였다.  

에세이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가 백두산 천지에서 고 이경재 신부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이었다. 세례를 위해서 수녀들의 가르침을 받는 장면들에서 미소가 지어졌다. 쉽게 주어지는 인스턴트 같은 세례들이 난무한 시대에, ‘영세 3수’만에 받은 세례를 상상하니, 숙연 해지까지 했다. 절정으로 치닫는 글이 아니었음에도, 눈에서는 까닭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람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는 계속 이어졌다. 일본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를 찾아 떠난 기행을 소개한다. 다음으로, 시대를 넘어, 민족을 넘어, 도혼 4백 년을 찾아간 심수관 도예 가문에 대한 서사였다. 백제를 떠나 일본에 도착한 한국의 도공들, 그들의 도혼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차별을 넘어 열도의 존경까지 이르는 길이 얼마나 험난했을까, 상상만으로도 황망했을 터이다. 뒤이어 쿠바 유민사를 취재하는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그가 만난 한인 2세 할아버지와 껴안고 울먹이던 장면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소련의 혁명 후, 연해주에 살던 조선인들을 강제 이주시킨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카레이스키 (고려인)을 만나기 위해 8000km에 걸친 시베리아 여행을 숨죽여 동행했다. 수난 속에서도 고려인은 한국의 문화를 놓지 않고, 긍지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았다. 본토인들도 놓치고 산 것들을, 그들은 품고 있었다.  

작가가 사람을 찾아 먼 길을 떠난 곳들을 보자면, 모두 조국의 아픈 과거사를 동반하고 있었다. 그들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동족이었으나, 타의에 의해서 강제로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차별의 설움, 고향의 그리움, 불합리의 악다구니하며 버텨냈을 고통은 자손에게까지 불가피하게 이어졌을 터였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한반도에 사는 본토인보다, 한국의 얼에 더욱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들을 경솔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는 이주자들에게 서린 한의 서사를 알리려는 소명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상처에서 신음이 배어 나오는데도, 또 떠나려 하겠는가. 딱지 앉을 무렵이면 또 떠날 수 밖에 없었는지. 왜, 사람들이 그리워 또 떠나야 했는지, 미약하게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하늘 아래 어떠한 것도 의미 없는 존재가 없을 터이다. 혹시 의미가 희석되어 빛바랜 채 아득하다면,  우린 삶의 의미를 찾아 먼 길을 떠나야 하리라. 우린 좋든 싫든 현재를 박차고 떠나야 한다. 새로움을 만나 그리워하고, 때론 상처와 신음이 남을지라도. 또한 딱지가 사라질 때쯤에 다시 떠나야 함은, 그 새로운 만남이 우리를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타인의 서사를 통해서 우리가 조금 깊고 넓어질 수 있는 사유의 과정을 거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순간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야 함은, 그곳에 그리운 사람이 있어서일 테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서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이 온다는 것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후략) 그렇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먼 길을 나서게 하는 이끌림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우릴 기다리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한수산 작가는 ‘비우지도 채우지도 못한 채, 나는 떠났지만 어느새 돌아와 있었고, 돌아와서는 또 떠나온 그곳에 마음을 띄워놓고 살았다’라고 적었다. 새로움이 손짓하고, 그리움이 연이어 손짓하는 인생이 아니겠는가. 고여있으면 썩기 마련인 것을, 무엇을 주저하겠는가. 삶의 의미를 찾아 먼 길을 떠나는 아름다운 노매드가 되어봄이 어떠한가. 

[*이상운 시인은 가족치료 상담가로 활동하며, (시집) ‘광야 위에 서다 그리고 광야에게 묻다’, ‘날지 못한 새도 아름답다’가 있다.]

*본 칼럼은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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