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화가/정 민우 글
국내거주 영주권 신분을가진 외국인들에게 주어진 ‘참정권'(지방자치단체장 선거투표권)에 따른 찬반 논의가 요사이 언론들을 통해 새롭게 조명되어 회자되고 있는듯 하여 그에따른 필자의 담백한 ‘소회’를 적어본다.
필자는 지난25년여 세월들을 국내를 떠나 재외국민으로 살아 오다보니 솔직히 이문제관련 아는바없이 지내오다 최근에 와서야 우연히 한 지인의 귀띔으로 알게되어 저의기 당혹감을 감출길이 없었다.
하여 관련기사들을 검색하던중 이미 15년전부터 이같은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어 시행되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접하 곤 한마디로 깜놀할 수밖에 없었다.
더우기 당시 국민들과 더불어 충분한 논의조차 없이 그저 ‘여야정’ 만의 합의하에 국회법을 통과시켜 시행 하게된 것이었음에도 이문 제관련 별다른 사회적 비판 여론조차 형성되지 않았었다고 하니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아니할수 없겠다.
당시 본법안발의의 주체였던 ‘국회정치개혁특위’가 내세운 명분은 소위 21세기 세계화 조류에 부응하고 민주주의의 보편성 구현과 함께 외국인이라도 지방세를 내고 자치법규와 지자체의 결정과 행정령을 따르는등의 의무준수에 합당한 권리부여 차원으로 민주 주의 원칙에 부합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같은 과정에서도 진통이 전혀 없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2002년 2월 ‘국회 법제사위’에 올라온 외국인 선거권은 여야의원들의 맹폭을 받아가며 한때 없던일이 되기도 했었다니 말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 대표적인 반론으로 당시 새천년민주당 소속의 조순형의원이 언급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있고 모든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적시된 헌법 제1조내용에 반하는 ‘위헌’이라는 주장에 한나라당 소속의원들 마져 동조하면서 해당 조항이 일시 삭제당하는 도화선이 되었던것 같다.
그러나 이후 17대국회에서 외국인 투표권 논의가 다시 재부활 당하게 되면서 애초에 내세워졌었던 세계화와 지역주민의 권리주장은 사라지고 뜬금없는 ‘재일동포’들의 일본내 지위향상을 위함 이라는 새로운 명분의 화두를 앞세워 재생 시켜낸 후 지금껏 지자체 선거때마다 국내거주 영주권 신분의 외국인들의 제한적인 투표참 여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져온 셈이다.
솔직히 필자또한 이문제를 놓고 ‘가타부타’를 논하기가 녹록치 않은 것도 사실임을 차마 부인할길이 없다.
이미 이와같은 관례가 서방선진국들 속에서 약 45개 민주 국가들에 의해 오래전부터 일찌기 법령으로 공식 입법화되어 실행해 오고 있음이 사실이겠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왠지 불편하게 여겨지는 심리또한 현재 동일법안을 입법 제도화시켜 적용해오고있는 대다수 서방 선진국들의 처지와 우리 조국의 처지가 전방위적으로 같다고 볼수 없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무릇 뱁새가 제처지를 모르고 애둘러 황새걸음을 흉내내다보면 필경엔 가랑이가 찢어지는 경을 칠수밖에 없는 법이다.
더우기 ‘주권침해’ 논란관련 정부측 해명으로 국가의 대표인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선거가 아닌 지자체 주민대표를 뽑는정도 까진 외국인이라도 영주권신분의 주민으로서의 권리에 부합하다는 주장또한 선뜻 동의하기가 뻘쭘하다.
사실상 지역마다 제각기 법이다른 거대 연방체제를 표방하는 서방 선진국들 사정과는 달리 대한민국의 현실은 비록 지방자치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고는하나 좁은 영토에 단일 민족국가로 지자체장 전체가 정부산하 기관장급 대표들로서의 역할 수행이라는 점에서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점을 인식하지 않을수 없겠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해관계에 직접적으로 얽혀있는 미•중•일 주변 삼국들을 위시한 국제사회속에서 생활하고있는 재외국민들의 지위향상을 위한다는 명분조차도 다소 피상적으로 느껴질뿐이다.
가장많은 수요에 해당하는 재외국민들이 밀집되어있는 미•중•일 삼국 중 그 어느국가도 우리 나라가 먼저 선행학습차원에서 ‘상호주의’를 견인하려해도 그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 순순히 선의적 따라하기를 실천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와같은 이해타산을 애써 따지지 않더라도 항구적으로 볼때 시대조류에 순응하는것이 반드시 바람직 하지 않다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다만 지나치게 ‘시기상조’라는 의미다.
이 문제와 관련해 좀더 노골적인 적절한 시기를 애써 적시하자면 비록 기약이 없다고는하나 한반도의 당면한 분단의 벽부터 허물고 나아가 평화적인 남북통일의 과업을 쟁취하고난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는 말이다.
조금은 여성비하적일수 있고 더불어 비록 매우 저속한 표현으로 느껴질순 있겠지만 옛말에 “여자가 헤프면 속곳에 물마를날이 없다”는 다소 민망하고 곱지못한 속담을 한번쯤 곱씹어 상기해 볼 일이라는 애두른 염려를 아니 할수가 없게된다.
지금은 비록 그수요가 1%대 미만으로 당락에 전혀 영향을 끼칠수 없는 미미한 수준이라곤하나 날로 증가추세에 있는 국내 장기체류 를 목적으로 유입되고있는 외국인들의 수요로 짐작컨데 이같은 상황과는 상반되게 오히려 줄어만 가는 우리나라 인구현황을 감안해볼 때 주객이 전도되는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가 아니겠는가?
이들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있는 중국계만 해도 그렇다.
영주권을 취득한 중국계의 수요가 언젠가 지자체선거의 당락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만큼 증폭되고 나면 중국정부가 과연 정치적인 목적으로 그들이 행사하는 표를 부적절하게 규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필자의 짧은 억측으로 과연 말이되는 주장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 지만 외교정책상 그들의 인권을 불가피하게 존중 해줄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면 차라리 그들만의 자치구를 따로 떼어주어 자기네들 끼리 독립적으로 살림살이를 하게하는 방식도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물론 그에 합당한 전방위적인 ‘인센티브’는 우리정부가 고수해야 마땅하겠지만 말이다.
여기까지가 딱 우리조국의 외국인 참정권 부여에 따른 필자의 ‘과유불급’이 될지? 한낱 오지랖이 될지? 모를 소회감의 전부임을 삼가 천명해 마지 않는다.
바야흐로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적시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 에게있고 모든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내용에서 ‘주권’과 ‘권력’의 의미는 두말할것도 없이 국정전반에 걸친 ‘위임자’를 뽑는 투표에 참여할수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신성불가침격인 ‘참정권’을 적시함이다.
본시 ‘주권’과 ‘권력’이란 어떠한 경우라 해도 결코 나누어 가질수 없는 생리를 가지고 있음을 모를자는 정녕코 없으리라!
소수단일민족 국가에서 주권과 권력을 동일하게 나누어 가질수 없는 성역과도 같은 참정권의 권리를 외국인 외부세력들과 동등 하게 나눌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가? 를 케묻지 않을수 없는것도 주권국민으로서의 권력에 수반한다고 사료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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