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 그륌역을 출발하는 베르니나 특급 [스위스 정부관광청 제공]
지역 농산물 소비·더 오래 머물며, 대중교통으로 여행
스위스의 산, 야생 협곡, 신비로운 숲들은 차원이 다른 청정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제 관광대국 스위스의 관심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이런 소중한 자원을 보존하는 것이다.
스위스가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여행’을 살펴보자.
10여 년 전 스위스 남부에서 자동차 여행을 할 때였다.
해발 2천m가 넘는 한 고갯길에서 풍경에 매료돼 잠시 정차한 뒤 풍경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스위스 여성이 다가왔다. 환경오염이 우려되니 자동차 시동을 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환경에 대한 스위스인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스위스 관광업계의 화두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특히 자연과 현지 문화를 체험하고, 지역 생산물을 소비하고, 한곳에 더 오래 머물면서 깊이 있는 여행을 할 수 있는 여행이 주목받고 있다.
친환경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지속가능한 여행 방법의 하나다.
◇ 베르니나 특급으로 찾아가는 코발트빛 호수
베르니나 특급(Bernina Express)은 만년설이 있는 엥가딘(Egadine) 계곡과 스위스 남쪽의 이탈리아 풍경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기차다.
고도차가 심한 철로를 미끄러지듯 달리면 파노라마 뷰가 극적으로 펼쳐진다. 알프스를 통과하며 가장 호화찬란한 절경을 보여 준다.
또 베르니나 특급을 타면 근사하면서도 가장 현지인다운 점심을 즐길 수 있다.중간역인 알프그륌에서 정차하면 역사 내 식당에서 메밀로 만든 전통 파스타나 퐁뒤, 말린 육포 등을 맛볼 수 있다.
현지에서 공수한 재료로 정성껏 조리된 식사를 마친 뒤엔 내리막길에 펼쳐지는 풍경에 매료될 차례다.
깊은 계곡 아래로 코발트빛 포스키아보 호수(Lago di Poschiavo)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스위스는 2013년부터 기관차와 철도 관련 시설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100%를 수력전기를 통해 공급한다.
탄소가 최소화된 외부 공기 조절, 난방을 위한 재생 에너지 사용 등의 방법으로 철도가 운영된다.
◇ 지속가능성의 대표 주자 체르마트
체르마트는 마터호른이 있는 작은 소도시다. 자동차 진입이 금지돼 있고 기차나 도보로만 찾아갈 수 있다.
마을에는 귀여운 전기자동차나 마차가 다닌다. 고르너그라트나 수네가 같은 곳은 산악철도로만 올라갈 수 있다.
체르마트에서 기차를 타면 최고의 마테호른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고르너그라트 정상으로 향할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4천m급 봉우리 29개가 병풍처럼 둘러친 절경의 한복판에 설 수 있다.
이곳에서 한국의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건 이제 뉴스가 아니다.
고르너그라트 철도는 내리막길의 운동에너지를 활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별한 제동 시스템 덕분에 기차의 동적 에너지가 전기 에너지로 전환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에너지는 기차선로 위의 전깃줄을 따라 전달돼 다른 기차의 운행에도 사용된다.
이곳을 체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두 발로 직접 자연을 만나기에는 트레킹이 좋다.
제대로 된 트레킹을 해보고 싶다면 제주올레의 6코스와 우정을 맺은 체르마트의’다섯 개 산정 호숫길’에 도전해볼 만하다.
스위스에서는 보통 산을 타다가 만나는 작은 호수들을 도시 인근 호수의 반대 개념으로 산정 호수라고 한다.
다섯 개의 아름다운 산정 호수를 지나 마터호른이 한 눈에 바라보이는 ‘수네가 파라다이스'(Sunnegga paradise) 전망대까지 가는 코스는 마터호른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다.
◇ 빙하의 품에 안기다…알레취 엑기스호른
빙하 없이 스위스를 논하기는 힘들다.
그중 빙하와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대표적 장소가 발레(Valais)주의 ‘알레취 엑기스호른'(Aletsch Eggishorn)이다.
이곳에서는 빙하를 배경으로 마터호른과 융프라우, 아이거 등 알프스의 대표적인 산들이 조화된 모습을 보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중인 스위스 정부관광청이 지난해 발표한 ‘밀리언 스타 호텔'(Million Stars Hotel) 테마 숙소 중 하나가 이곳에 있다.
알레취 빙하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련된 아늑한 숙소 ‘큐브 알레취'(Cube Aletsch)에서 하룻밤을 보내 보자.
도시의 불빛이 방해하지 않기에 쏟아질 듯한 별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해가 지면 야외 노천 욕조에 들어가 포도주 한 잔을 마시며 낭만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객실은 소파 베드와 테이블, 화장실과 샤워실 등을 갖추고 있어 하룻밤을 보내는 데 불편함이 없다.
◇ 스위스 남국의 열기를 발산하는 티치노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스위스 남부 티치노(Ticino)주는 여느 스위스 지역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고장이다.
열정적인 사람들과 이글대는 태양, 새파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야자수가 마치 휴양지 같은 느낌을 준다.
마지오레(Maggiore) 호수는 이런 티치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른 아침 고요한 호수에서 노를 저을 수 있는 ‘스탠드 업 패들링'(stand-up paddling)을 체험할 수 있다.
오후에는 브리싸고(Brissago) 섬으로 건너가 노을을 감상하며 바비큐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스위스는 미식 관광으로도 유명한 나라다.
이 지역에서는 지속가능성에 집중하는 미식 레스토랑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티치노에 있는 동굴 레스토랑 그로또 알리트로보(Grotto al Ritrovo)는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다.
전형적인 티치노 향토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동굴형 레스토랑이다. 신선한 허브나 리코타치즈를 곁들인 가정식 파스타와 제철 생선, 티치노산 육류 메뉴가 인기다.
◇ 레만호의 로쉐 드 녜
레만호가 있는 보(Vaud)주의 작은 마을 몽트뢰에서 해발 2천42m의 로쉐 드 녜(Rochers de-Naye) 정상까지는 톱니바퀴 열차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몽트뢰에서 1892년에 만들어진 톱니바퀴 열차를 타고 정상에 내리면 스위스와 프랑스의 알프스 봉우리들과 함께 레만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로셰 드 녜 정상까지는 레만호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파노라마가 끝없이 펼쳐진다.
이곳은 쉽게 거닐 수 있는 하이킹 트레일이 매력적이다.
트레킹 도중 운이 좋다면 알프스의 두더지 마모트도 맞닥뜨리는 행운을 잡을 수 있다.
전 세계의 식물을 볼 수 있는 정상의 알프스 정원, 람베르티아(Rambertia)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산속에서 노를 저어 볼 수 있는 티틀리스
세계 최초의 회전 곤돌라로 유명한 루체른주의 티틀리스에서는 중앙 스위스 알프스와 빙하의 파노라마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곤돌라가 정상에 도착하는 마지막 600m 구간 동안 360도 회전하며 사면의 풍경을 보여준다.
5분 동안 천천히 회전하는 티를리스의 회전 곤돌라에서는 알프스의 하늘에 둥실 떠오르는 느낌을 맛볼 수 있다.
또 티틀리스 정상에서는 빙하 체어리프트를 타고 빙하의 크레바스를 관찰할 수 있다.
빙하 위에 놓인 구름다리 클리프 워크(Cliff Walk)를 건너며 아찔한 빙하 체험도 즐길 수 있다.
정상 빙하 체험을 마쳤다면, 중간역인 트륍제(Trubsee)로 향할 시간이다.
낭만적인 산정호수, 트륍제에서는 4인용 나룻배를 빌릴 수 있다. 배 대여료는 무료지만, 마련된 상자에 10스위스프랑(약 1천200원)을 자발적으로 낼 수도 있다.
트륍제 호수 역에는 아름다운 야생화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플로라 트레일’이 있다. 걷는 내내 알프스의 봉우리와 초록 풍경이 사방을 에워싸는 그림 같은 곳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