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마이크론 제재는 첫 반격”…
미국, 동맹 연대로 제재 지속 의지…선택지 좁은 중국, 타협 가능성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는 미중 반도체 전쟁이 시작된 이후 중국의 첫 반격이다.”
싱위칭 일본 정책연구대학원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23일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같이 진단했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이 지난 21일 미국 반도체기업 마이크론의 제품이 중국에 심각한 보안 위험을 초래하는 걸로 판단된다며, 중요 정보기술(IT) 인프라 운영자에게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중지하도록 한 데 대한 반응이다.
최근 1∼2년 새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화웨이 제재, 반도체 수출 제한, 중국을 배제한 반도체 공급망 재편 등 첨단기술 관련 파상 공세를 펴온 데 대해 수세였던 중국이 처음으로 공세로 전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사회는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이 시장 규모를 무기로 한 반격 카드를 꺼냈다고 보고 향후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중국 반격 개시 배경은
마이크론은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제조기업으로, 그 제품은 스마트폰과 컴퓨터·데이터 저장장치 등에 사용된다.
차이신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마이크론의 중국 매출은 33억 달러(약 4조3천300억원)였고, 이는 마이크론 전체 매출의 11%를 차지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작년 4분기 세계 D램 시장에서 마이크론(23.0%)은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에 이어 점유율 3위에 올랐고, 낸드플래시 시장에선 점유율 10.7%로 5위였다.
중국은 지난 3월 31일 마이크론에 대한 심사 개시를 발표한 지 50여일 만에 사실상 ‘중국 시장 접근 차단’이라는 강수를 뒀다.
일각에선 마이크론이 2017년 ‘중국 제조2025’ 핵심 기업 중 한 곳으로 통했던 D램 생산기업 푸젠진화반도체(JHICC)가 기술을 도용했다며 소송을 걸어 결국 망하게 한 걸 염두에 두고 제재를 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눈여겨볼 대목은 중국의 이번 조치가 21일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폐막 이후 발표됐다는 점이다.
G7이 정상회의 공동성명(코뮤니케)을 통해 중국에 대한 경제·안보·대만 문제를 망라한 전방위적인 견제 조치를 한 것과 관계가 있다는 얘기다.
공동성명을 보면 중국과 ‘디커플링'(분리)을 하지는 않되 “핵심 공급망에서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을 줄일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첨단반도체는 물론 희토류·리튬 등 핵심 광물을 겨냥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미국 주도로 중국을 배제하는 반도체·핵심 광물 공급망 재편에 서방 각국이 가세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중국으로선 최근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총 430억 유로(약 62조원)를 투입해 EU 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반도체법 시행에 합의하고 대만과의 관계 강화에 나서는 상황도 고려했음 직하다.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대중국 첨단반도체 ‘압박 연대’가 갖춰진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중국이 마이크론 제재라는 강수를 뒀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美, 동맹과 함께 대응 의지…중국의 선택은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 발표 이후 미국 상무부는 동맹들과 함께 시장 왜곡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을 바탕으로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좁히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미 미국은 2019년 5월부터 중국의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의 대명사인 화웨이를 겨냥해 5G용 반도체 칩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고, 이젠 4G용 반도체 수출도 차단할 기세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작년 8월 반도체 산업 발전과 기술적 우위 유지를 위해 모두 2천800억 달러(약 368조원)를 투자하는 것을 골자로 한 반도체법(CHIPS Act)에 서명한 바 있다. 이 법에 따르면 투자 대상에서 중국은 철저히 배제된다.
미국은 올해 들어 반도체 생산장비 기업인 네덜란드 ASML과 일본 니콘 등이 대중 수출 통제에 동참하도록 조치했다. 또 이미 한국·대만·일본과 함께 중국을 뺀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인 ‘칩4’를 주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향후 선택이 주목된다.
마이크론 제재 발표 이후 중국 관영 매체들이 제재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보도를 쏟아내는 가운데 중국 당국은 부당한 제재가 아니라는 걸 부각하려고 애쓰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중국이 제재 발표 이후 추이를 보면서 추가 대응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작년 10월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거친 뒤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거치면서 중국 당국은 ‘반도체 굴기’를 재차 다짐한 바 있다. 따라서 외부 여건이 아무리 험악하게 바뀐다고 하더라도 반도체 산업 육성 기조를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중국은 2014년 60조원대 국가 펀드인 ‘대기금'(공식 명칭은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을 설립해 SMIC(中芯國際·중신궈지)와 같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칭화유니 계열의 UNISOC(쯔광잔루이<紫光展銳>)과 푸젠진화반도체 등 반도체 설계업체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기도 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중국 관영매체들에 따르면 중국의 3월 집적회로(IC) 생산량은 294억개로 2021년 12월 이후 최다 월간 생산량을 기록했으나, 그런 상황이 지속될지 여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중국 내에서조차 순수 자력을 통한 반도체 산업 굴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 탈출 쉽지 않은 美 포위망…中, 타협 불가피할 듯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반도체 산업 압박을 중국이 견뎌내긴 쉽지 않아 보인다.
싱위칭 교수는 차이신에 “미국 기업들은 반도체 설계, 설계를 위한 반도체 전자설계자동화(EDA) 소프트웨어, 반도체 제조장비 분야에서 독점권을 갖고 있다”며 “현재 미국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반도체 산업을 가진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 미국은 반도체 설계(팹리스) 최강국으로 사실상 반도체 생산 통제권을 쥐고 있다. 여기에 파운드리 세계 1·2위인 대만과 한국, 반도체 소재 분야에 강점이 있는 일본이 협력하면 중국이 설 자리는 매우 비좁다.
중국 내 반도체 설계 기업들은 미국의 기술과 기술 플랫폼을 이용해 자체 브랜드와 고유 디자인으로 자사 제품을 생산한다. 중국 역시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라는 얘기다.
미 전략문제연구소(CSIS)의 그레고리 앨런 첨단기술 담당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중국의 빠른 반도체 산업 발전을 막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그가 밝힌 미국의 방안은 ▲ 인공지능(AI) 산업 발전 억제 ▲ 반도체 연구개발(R&D) 차단을 위한 EDA 소프트웨어 사용 금지 ▲ 미국산 반도체 장비·부품 수출 금지 등이다.
이런 가운데 미중 반도체 전쟁의 본질은 ‘패권 경쟁’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개혁개방으로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룬 중국이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미국의 패권적 질서에 도전하고 있으며, 첨단 반도체는 패권 경쟁의 승패를 가를 핵심 이슈라는 것이다.
싱 교수는 “미국은 중국을 전략적 경쟁국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첨단 반도체 산업은 미중 경제 전쟁의 최전선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러면서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는 시장 규모의 강점을 이용한 반격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그런 반격이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미국이 어떤 대응을 하느냐에 달렸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여전히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폐막 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냉각된 미중 관계가 “아주 조만간 해빙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데 중국은 주목하는 것으로 보인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