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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애틀랜타.미국.월드Opinion 우리에게 통일은 오려나? -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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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우리에게 통일은 오려나? –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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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4시 애틀랜타 한인회관에서 좋은이웃되기운동 본부 주최 ‘2022 한인사회 백년대계 포럼’이 열린다. 이 포럼은 좋은이웃되기운동 본부(대표 박선근)이 미국의 한인 이민사회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발전을 모색 하기 위해 2003년부터 3년- 5년 간격으로 개최하고 있는데 이번 포럼이 6번째 포럼이 된다.총 14명의 패널이 열띤 논쟁을 펼치는 데 주요 패널 중 신복룡 교수의 특별 기고문을 전재한다. 50여년간 품어온 <삼국지>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완역출간의 꿈을 최근 이룬 신복룡(申福龍,1942년생) 박사. 그는 교수 임용 후 42년간 26권의 저서와 52권의 번역서를 냈다. 논문(121편)과 자료집(8권)을 제외한 단행본 저술만 1년에 평균 1.8권의 속도이다. 건국대 학부 4년 내내 장학생이었던 그는 전체 수석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편집자주

신복룡 (전 건국대학교 석좌교수 : 한국정치사)

“허무하도다.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건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이다.” –솔로몬, 『구약성경』 「전도서」 1 : 4

젊었을 적에 나는 애들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애완 동물을 기른 적이 있다. 그러나 몇 번 기른 뒤에 다시는 돌아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헤어지는 슬픔이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강아지도 사람과 꼭 같이 백내장과 관절염에, 이 빠지고, 치매 오고, 자기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면 정을 떼려고 애쓰고, 그리고 끝내 가족도 모르게 집을 나가 혼자 죽는 일이 너무 가슴 아프다.

나는 천주교 신자인데, 5년마다 신부님이 떠나면서, 헤어질 때는 뒤로 돌아보지 않고 쌀쌀맞게 떠나는 모습이 너무 가슴 저리다. 떠나가신 다음에는 전화 한 통, 문자 메시지 한 줄의 답장도 없다. 옛날 교회의 신도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그런 사람을 모른다고 대답한다. 신부님의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새로 오시는 신부님에 대한 예의요, 불문율이란다. 떠나가신 신부님을 잊어야 한다. 신임 신부님 앞에서 떠난 신부님의 얘기를 꺼내는 것도 실례이다.

죽음이 왜 슬픈가? 이 좋은 세상 떠나기가 싫어서일까?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이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천국이나 극락에서 만나자고 위로하지만, 그것은 믿음이 두터운 사람이나 하는 말이지, 우리 같은 필부에게는 혈육의 정이 너무 그립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더 사무친다. 나는 문재(文才)가 없어 참아 글로 그 심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다음의 시로 내 심정을 대신한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을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문병란(文炳蘭)의 시 「직녀(織女)에게」에서(일부)

통일에 대한 첫 번째 허구 : “우리의 소원은 통일”

위와 같은 서정적인 표현을 떠나 역사와 서사(敍事)로서의 통일 문제를 돌아보면 서사가 서정보다 더 가슴을 저리게 한다. 아마도 보수 우익의 시대에 남한 국민은 통일을 체념하고 살았을 것이다. “박정희(朴正熙)의 남한과 김일성(金日成)의 북한”이라는 구도는 정착되어 갔고, 그런 상황에서 전쟁이나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서 갑자기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기 시작했다. 2000년대 남북 관계의 급격한 개선으로 한국 사회는 통일에 대한 성급한 낙관 분위기에 빠지게 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애국가》 다음으로 많이 합창했던 노래는 아마도《통일의 노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자기 최면에 걸려 있었다. 철부지 시절, 정월 보름에 달에 절을 올리며 “통일해 줍시사.”고 빌던 소년이 이미 80객이 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좀 더 냉정하고, 정직해야 한다. 우리는 진실로 통일을 바라고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난날에는 “통일해야 한다”는 의견이 90%대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고, 독일이 통일된 이후에는 “통일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통일을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68%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통일원, 1990)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통일 의식이 퇴색되어 가고 있다.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통일의 당위성을 믿고 있는 중‧고등 학생의 비율은 40% 안팎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어느 쪽이든 간에 수치상으로 말한다면 아직도 한국인의 통일 의지가 조금 더 높은 편이다. 그러나 그것은 통계의 맹점일 뿐이다. 우리가 통일을 갈망한다는 것은 통일로 말미암아 잃는 것이 전혀 없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요, 통일로 말미암아 잃는 것이 있을 때, 통일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갈등[분단]이 생기는 이유는 그 갈등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이익을 즐기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일로 말미암아 잃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득권이다. 남한의 주민들은 최근 몇 년 동안에 일어난 북한의 기근이 자신의 부담이 되리라는 염려에서 조세 부담이 늘어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에게 통일은 그들의 기업 가치에 우선하지 않는다. 적어도 남북한의 정치적‧경제적 지배층에 분단은 축복일 수 있다. 분단이 있었기에 지금의 높은 지위나 물질과 권력의 특권을 누리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그들은 분단을 즐기고 있을 수도 있으며 이런 점에서 한국인의 통일 의지는 대단히 과장되어 있다.

통일은 당장만 생각하면 결국 양보이며 짐의 나눔이다. 한국민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통일 방안은 없다. 통일되는 순간에 이 사회의 누구인가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가치를 희생하거나 양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양보는 대체로 지배 계급의 것이다. 지배 계급의 회심(悔心)이 이루어질 때, 그리고 그들이 민족의 소명(召命)에 대하여 깨달을 때 통일은 구체적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북한은 곧 멸망한다는 허구

나는 지난날, 김일성이 생존해 있을 때 이북5도 지도자 연수회에서 “북한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주제로 강연했다가 봉변을 겪고 빠져나온 적이 있다. “김일성이 곧 죽을 것이고, 그러면 북한은 곧 무너질 텐데,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는가? 취소하시오.” 하며 머리 허연 노인들이 주먹을 휘두르며 항변했다. 그리고 나는 그 강좌에서 하차했다. 많은 우익은 김일성의 죽음이 북한의 붕괴와 직결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1994년의 그의 죽음 이후에도 북한은 여전히 존립하고 있다. 오리려 더 강고해졌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북한의 붕괴를 논의할 때는 그 개념의 정확성이 필요하다. 남한에서 말하는 북한 붕괴론은 다음의 세 가지를 상정할 수 있다.

(1) 루마니아의 챠우세스쿠(N. Chausescu)의 경우와 같이 김일성 세습 정권의 몰락

(2) 구소련의 경우와 같이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3) 구동독의 경우와 같이 북한이라고 하는 국가의 붕괴

남한 사회에서는 북한의 붕괴를 논의할 때, 위의 세 개념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통일을 상정하면서 북한의 붕괴를 논의할 때는 (3)의 경우를 의미한다.

경제난이 북한 멸망의 동기가 되리라고 수많은 사람이 주장하고 있지만, 지배 계급의 악의, 곧 관료의 부패나 수탈이 극대화되지 않는 한, 자연적 빈곤 때문에 국가가 무너지는 사례는 역사에 없었다. 민중 봉기는 인재(人災)이지 천재(天災)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에는 밑으로부터의 혁명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 간접 시설이 구축되어 있지 않다.

북한의 붕괴론과 관련하여 부패(腐敗)가 거론되는 때도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줄곧 가난했던 사람이나 “고난의 행군”을 견뎌낸 사람은 가난 때문에 정부에 저항하지 않는다. 지난날 한때 풍요로웠던 과거가 있던 사람들이 인간의 비리 때문에 다시 가난하게 되었거나 지금의 가난이 지배 계급의 인위적 실수나 악의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 민중은 참지 않으며 그 정권은 붕괴한다.

따라서 북한의 관료가 부패하기 시작했다면 상황은 다르지만, 세계의 민란사를 보면 관료가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부패를 자행했을 때 민중은 묵시적으로 이를 양해하기 때문에 그것은 정권 붕괴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 부패에도 악의적 부패와 선의의 부패가 있다.

지금 북한은 너무 빈곤하여 수탈할 여지가 없다. 수탈은 조세(租稅)를 통하여 일어나는데 북한은 적어도 조세 문제에서만은 수탈의 메커니즘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수탈은 토지를 매개로 하는 농업 경제에서 관료의 비정(秕政)에 의해 현물 수탈의 방법으로 발생하며, 산업 사회에서는 화폐를 매개로 하여 자행된다.

그런데 북한은 전통적으로 농업 사회이며, 토지가 척박하여 남한 사회에 견주어 농업 수탈이 심각하지 않았으며, 화폐 경제도 발달해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가난 때문에 민중이 봉기하고 그것 때문에 북한이 무너질 가능성은 적다. 민중 봉기는 전통적으로 곡창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현재의 남북 분단은 역설적으로 북한이 생존하기에 적절한 긴장을 제공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의 북한과 같은 정도의 빈곤, 폐쇄성, 지배 계급의 경직성으로 무장된 국가에서 분단과 같은 대내외적 긴장이 없었다면 국가의 존립은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북한은 생존을 위한 적절한 적개심과 충격이 있으므로 그것이 오히려 북한을 지탱시키는 힘이 되고 있다. 국가의 멸망은 적국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국이 없는 나라가 더 멸망하기 쉽다.(『孟子』 告子章句(下) : “無敵國外患者國恒亡”)

북한의 멸망을 논의하면서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또 하나의 어리석음은 북한이 멸망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남한으로 흡수 통일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믿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남한 사람들은 북한이 붕괴하면 그것은 곧 우리의 땅이 된다는 또 하나의 허구[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설령 북한이 붕괴할지라도 그곳에 러시아‧중국‧한국‧미국 가운데 어느 나라가 먼저 진주할는지를 예측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북한이 붕괴할 때 중국군은 2시간 이내에 북한 진입이 가능하다. 그 무렵 미군이 철수했다고 가정한다면 한국의 전망은 더욱 어둡다. “북한의 분단”이 다시 일어나리라는 분석(이삼성)도 있다. 북한이 급작스럽게 붕괴할 때를 대비하여 남한 측이 마련한 통일 백서 “충무 9000”(2004)이 있었는데, 그에 따르면 북한이 붕괴할 경우, 남한의 통일부 장관이 북한의 총독이 된다고 되어 있다. 이는 참으로 코믹하다.

“왜 통일해야 하나요?

우리는 통일 논의를 전개면서 가장 진부하고도 원초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왜 통일해야 하는가?”라고 청소년들이 묻는다. 분단의 극복이 가지고 있는 의미, 바꾸어 말하면 통일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1) 역사의 진정한 의미가 진보에 있는 것이라면, 역사의 단절이자 중단이며 분극화 현상인 분단을 극복하는 일은 단순한 공간적 통합의 의미를 넘어 역사를 복원(復元)하는 의미를 지닌다.

(2) 통일은 대결에서 오는 쌍방의 불필요한 국력 소모를 줄이고 더 나아가 남북의 협조를 통한 국력의 상승(相昇)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통일된 조국은 G-7까지 가능하다.

(3) 남북한이 통일됨으로써 쌍방에서 자행되고 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악(惡), 이를테면, 비민주적인 폭압 정치, 경제적 불균형과 빈곤, 전쟁의 비극성을 감소할 수 있다.

(4) 언어, 생활 습속, 문화 유산의 이질화(異質化)에서 오는 민족 동질성의 파괴를 중지할 수 있다.

(5) 이산(離散)의 아픔과 같은 인도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통일의 날이 해방의 날보다 기쁠 것이다.

지난날에는 통일지상주의가 아니면 애국자가 아닌 듯이 여겨지는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통일지상주의자를 소 쳐다보듯 한다. 그것이 무섭다. 통일은 당장 짐이 될 것이며, 급속한 통일은 우리처럼 취약 국가에는 짐이 될 수 있다. 억지로 이루어지는 통일은 내란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우리는 독일 통일의 모델이 아니라 예멘(Yemen) 통일의 모델에서 배울 점이 더 많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길게 볼 때 통일 비용이 분단 비용보다 적을 것이다. 적어도 화학적 통일을 위해서는 통일된 뒤에 30년 정도의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누구도 정확한 산출이 어렵고 그 근거 이론이 취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Group, Inc.)이 산출한 액수, 곧 한국의 1년 치 GDP와 같다는 추론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2020년 현재 한국의 GDP는 1조 달러를 조금 넘는다. 30년 거치에, 북한 자원 개발과 인력 수급 효과 그리고 국력의 시너지를 고려한다면, 통일은 분명히 귀하에게 “남는 장사”일 것이다. 그런데 왜 주저하면서, 안에서만 싸우고 있는가?

참고문헌

국토통일원, 『통일 문제 의식 조사』(1990)

국토통일원, 『통일 백서 : 충무 9000』(2004)

『孟子』

문병란(文炳蘭), 「직녀(織女)에게」

『성경』

신복룡, 『한국분단사연구 : 1943-1953』(서울 : 한울출판사, 2001)

이삼성,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서울 : 한길사, 2018)

「한국 통일 비용에 관한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Group, Inc.) 보고서」, The Washington Post, June, 17, 2000.

* 이 글은 『해방정국의 풍경』(2017)의 「친일」 편을 증보하여 개고(改稿)한 것임.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행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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